연극 ‘오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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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있어요 잘 있어요. 그 한마디였었네. 잘 가세요 잘 가세요. 인사만 했었네…” 커튼콜에서 배우들은 양팔을 흔들며 유행가를 부른다. 극중 감정에서 미처 헤어나지 못한 강부자도 팔을 휘휘 젓는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질펀한 굿판으로 녹여낸 무대의 뒷맛은 알싸하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무는 굿

 6년 만에 서울 무대에 오른 ‘오구’(이윤택 작·연출)는 죽음이 주는 두려움과 슬픔을 한국 특유의 웃음과 해학으로 풀어낸 연극이다. 1989년 서울연극제에서 초연한 이후 지금까지 1200회 공연에 35만명의 관객이 다녀갔다.

 배우들은 관객이 자리에 앉기도 전에 무대에 등장한다. 아들(오달수)은 평상에 자리잡고 앉아 신문을 펼쳐들고 관객의 운세를 봐주겠다며 능청을 떤다.

 만삭의 며느리(김소희)는 다듬이질에, 손녀는 고무줄놀이에 한창이다. 객석을 향해 “오셨어요”라며 공손히 배꼽인사까지 마친 노모(강부자·남미정)도 평상에 올라 염불을 왼다. 죽음의 그림자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평온한 일상이다. “황천길이 멀다더니 대문 밖이 저승일세”라는 만가(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노래)의 한 대목처럼 죽음이 삶의 한 부분임을 보여주는 듯하다.

 저승길 준비는 살포시 잠들었던 노모가 꿈속에서 죽은 남편과 저승사자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혼비백산해 깨어나 산오구굿(생전에 이루지 못한 소원이나 원한을 풀어주고 극락왕생을 빌어주는 굿) 한판 벌여달라는 노모의 청을 아들은 마지못해 들어준다.

 굿판은 눈물과 웃음으로 버무려진다. 청상과부로 온갖 고생하다 집 한 채 마련하고 겨우 살만하니 이승을 등져야 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꺼이 꺼이” 울어대던 노모는 ‘한오백년’ ‘너무합니다’ ‘처녀뱃사공’ 등을 메들리로 구성지게 불러대며 굿의 흥을 돋운다. 그러다 “나 갈란다”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픽 쓰러진다.

죽은 자를 위한 장례, 산 자를 위한 놀이판

 2막은 염꾼·조문객·저승사자가 차례로 등장하지만 음산하거나 비통하지 않다. 오히려 솜털로 숨이 멎었는지 확인하고 시신을 닦고 수의를 입히는 등 복잡한 염 과정을 희화화 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낯섦을 줄여준다. 초상집 분위기도 엄숙하거나 침울한 것과 거리가 멀다. 저승사자가 이승에 발을 들여놓는 대목도 독특하다. 인간 못지않은 물욕과 탐욕을 드러내는가 하면 과수댁과 정을 통하기도 한다.

 초상집은 현실세계와 상상세계가 섞이고, 산 자와 죽은 자가 서로 소통하는 공간이 된다. 새벽닭이 울고 먼 길 떠나는 노모가 한번씩 뒤돌아보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래도 훌훌 털어내지 못한 이승에 대한 미련이 느껴진다.

 굿판이 그렇듯 오구도 무대와 객석이 따로 없다. 배우들이 관객에게 농담을 건네는가 하면, 노잣돈을 걷기도 한다. 무당 석출 일행의 신명나는 길놀이와 노모의 상여가 나가는 곳도 객석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1990년 오구로 배우 인생을 시작한 오달수가 아들로 출연한다. 초연 멤버인 남미정·하용부·배미향·김소희도 무대에 오른다.

 9월 5일까지 호암아트홀. 4만원, 6만원.

▶ 문의=02-751-9606~10


[사진설명] 1. 굿판에서 노모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눈물 짓다가 구성진 가요 메들리로 흥을 돋우기도 한다. 2. 배우들이 한데 어우러진 ‘오구’의 클로징 장면.

<김은정 기자 hapia@joongang.co.kr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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