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통령의 ‘공정한 사회’와 장관들의 위장전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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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총리·대법관·검찰총장·장관 인사청문회가 열릴 때마다 한국 사회는 부끄러운 자화상(自畵像)과 마주치며 곤혹스러운 신음소리를 내야 한다. 위장전입(僞裝轉入)이나 부동산 투기, 논문 중복게재, 탈세 등이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를 처리할 일률적인 잣대가 없다는 것이다. 야당 때 이를 신랄하게 비난하고 후보자를 낙마(落馬)시킨 정당도 여당이 되면 수세에 몰린다. 위장전입은 엄연한 범법인데 사법적으로 조치되지 않고 청문회를 통과한다. 법을 다루는 사람도 위장전입을 하는가 하면 ‘재산증식을 위한 위장전입은 안 되고 자녀교육을 위한 것은 된다’는 이상한 논리도 등장한다. 위장전입 대부분이 청문회를 통과했으니 앞으로 나타날 위장전입만 엄정하게 다룰 수도 없다. “대통령도 위장전입한 사실이 있지 않느냐”고 말하는 이도 많다. 공직자의 도덕과 법질서에 관한 일대 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김대중 정권 때 장상·장대환 총리 후보자를 낙마시키면서 위장전입을 주요 요인으로 거론했다. 그런데 현 정권도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정운찬 전 총리와 현인택 통일, 이만의 환경, 임태희 전 노동(현 대통령실장) 장관이 위장전입을 시인하고 사과해야 했다. 특히 이귀남 법무장관과 김준규 검찰총장 그리고 민일영 대법관은 법을 집행하는 고위 공직자라는 점에서 더욱 논란이 되었다. 이번 개각에서도 위장전입은 여지없이 등장했다.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현동 국세청장,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의 위장전입이 밝혀진 것이다. 인사청문을 통과한 이인복 대법관 후보자도 야당은 위장전입을 들어 부적격자라는 꼬리표를 붙여놓았다.

며칠 전 8·15 연설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공정(公正)한 사회’를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공정한 사회는 “출발과 과정에서 공평한 기회를 주는 사회”라고 말했다. 위장전입은 범법이기도 하거니와 대표적인 불공정행위다. 가난하고 힘이 없는 약자는 자녀를 좋은 학군에 보내거나 아파트를 분양받을 능력이 안 돼 위장전입을 시도하기도 어렵다. 이미 경제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한 계층이 위장전입을 통해 자녀에게 경쟁력을 대(代)물림하거나 아니면 재산을 더욱 증식할 기회를 갖는 것이다. 위장전입은 강한 자가 불공정을 통해 더욱 강하게 되는 잘못된 통로다. 여기에 무슨 공정한 사회가 있는가.

위장전입 같은 범법이 오랫동안 만연되었다고 해서 자연스레 묵인돼서는 안 된다. 정권과 사회는 고민해서 잣대를 만들어야 한다. 여러 건이 중복됐다거나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이후에도 위장전입을 저지른 사례 등은 더 엄정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여야 구별이 없고, 많은 이가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이런 문제가 방치되면 도덕의 해이와 약자의 박탈감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공정한 사회’를 열 번 외치는 것보다 인사(人事)에서 한 번이라도 더 고민하는 게 위장전입 같은 ‘불편한 진실’을 줄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