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다 흰 꾸러기 마음

"요즘 애들은 영악해서 산타클로스 따위는 믿지 않을거야."

많은 어른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유아·초등학생 30여명과 그들의 부모를 취재한 결과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를 믿는 아이들은 예상보다 많았다. 동심이 살아 있는 어린이를 위해 취재 내용을 산타 할아버지가 등장하는 동화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편집자

퍼얼 펄. 첫 눈이 내리던 어느 날이었어요.

"벌써 눈이 내리네!"

산타 할아버지는 서둘러 외출 준비를 했어요.

첫눈이 내리면 산타 할아버지는 마을로 내려가요. 누가 착한 일을 했는지, 누가 나쁜 일을 했는지 미리 알아보기 위해서지요.

하지만 산타 할아버지가 옆에 와 있어도 쉽게 알아볼 수 없어요. 산타 할아버지는 마법을 부려 엄마나 아빠, 친구나 동생으로 모습을 바꾸기 때문이에요. 쉿! 이건 우리끼리만 알고 있기로 해요. 산타 할아버지의 비밀을 소문내면 선물을 안 주실지도 모르니까요.

마을에 내려온 산타 할아버지는 선물을 줄 어린이들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꺼냈어요. "원석이에게 제일 먼저 가봐야겠구나."

펑! 산타 할아버지는 최원석(10·서울 등촌동) 어린이의 동생 윤선(6·여)이로 변신했어요.

"오빠, 이번 크리스마스에 산타 할아버지한테 무슨 선물 받고 싶어?"

"바보야. 산타 할아버지는 이 세상에 없어. 산타 할아버지가 있다면 귀신 같은 것도 있을 거 아냐. 그런 건 없는거야."

산타 할아버지는 안타까워했어요.'나를 믿지 않는 어린이에게는 선물을 줄 수 없는데….'

두번째로 찾아간 사람은 장혜지(13·여·서울 반포동)양이었어요. 산타 할아버지는 혜지 엄마로 모습을 바꿨어요.

"혜지야, 산타 할아버지한테 무슨 선물을 받고 싶니?"

"중학생이 무슨 산타? 갑자기 왜 그러세요?"

산타 할아버지는 가슴을 쓸어내렸어요.

'휴∼ 들킬 뻔했다. 혜지가 올해 중학생이 된 걸 깜빡했구나. 이젠 어린이가 아니지.'

산타 할아버지는 썰매를 타고 김유진(10·여·경기도 분당 까치마을) 어린이의 집으로 갔어요. 유진이는 학원에서 돌아오지 않았고 유진이의 엄마·아빠는 거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산타 할아버지는 바람으로 변해 살짝 다가갔어요.

"이제 알 만한 나이가 됐는데 유진이는 아직도 산타가 있다고 말하네요. 혹시 선물에 눈이 어두워서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닐까요?"

산타 할아버지는 속이 상했어요. 어른들이 어린이의 순수함을 의심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아이들은 산타 할아버지한테서 멀어지거든요.

'내가 선물을 줄 아이가 아예 없는 건 아닐까?'

산타 할아버지는 갑자기 걱정이 됐어요. 이번엔 좀더 어린 김진영(9·여·경기도 평택시 세교동) 어린이를 찾아갔어요. 그런데 진영이는 엄마랑 심각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산타 할아버지는 창 밖에 매달려 몰래 이야기를 엿들었답니다.

"엄마! 중앙일보 기자 언니가 저한테 e-메일을 보냈어요. 부모님이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신 것처럼 꾸민 경험이 있으면 얘기해 달라고요.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신 게 아니었어요?"

"진영아, 실은 재작년에 네가 잘못한 게 있었는지 새벽까지 기다려도 산타 할아버지가 오지 않으셨어. 대신 엄마·아빠가 너한테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려고 샀던 드레스를 포장해 트리 밑에 놔뒀단다. 아침에 일어나서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이 없으면 네가 실망할까봐 그랬던거야. 미안해."

"와∼ 감쪽 같이 속았네! 올해는 꼭 오시겠죠?"

산타 할아버지는 활짝 웃으며 진영이의 이름에 동그라미를 그렸어요.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안하현(7·여·서울 신림동) 어린이 집이었어요. 산타 할아버지는 하현이의 언니 휘주(12)로 모습을 바꾼 뒤 물어봤어요.

"너 산타 할아버지 본 적 있니?"

"보고 싶은데 한밤중에 오시니까 졸려서 못 봐."

하현이의 대답에 산타 할아버지는 용기를 얻었어요. 아직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선물을 나눠 줄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죠.

지금은 산타 할아버지를 믿는 아이들이지만 나이를 먹으면 의심이 들지도 몰라요. 하지만 산타 할아버지를 믿는 동안에는 어떤 모습으로든 진짜 산타 할아버지가 찾아오실거예요.

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