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을 택배로 보내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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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매년 겨울 수렵을 즐기는 宋모(28)씨는 지난달 S총포사를 찾았다. '매그넘 350' 공기총과 실탄 1천6백발을 주문하자, 총포사측은 "당장 재고가 없으니 며칠 후 택배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공기총을 택배로 보내준다는 말에 놀랐지만 宋씨는 대금을 지불했다. 그러나 약속한 날짜가 지났는 데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알아보니 택배 과정에서 공기총과 실탄 모두 물류창고에서 분실됐다는 것이었다. 宋씨는 "분실된 총기가 혹시 범죄에 쓰일까 두렵다"고 말했다.

총기 관리가 너무 허술하다. 총기가 분실 가능성이 있는 택배로 오가는가 하면 인터넷 사이트를 통한 총기 거래도 이뤄지고 있다.

◇위험한 총기 택배=본지 취재팀이 전국 30곳의 총기 판매업체에 전화를 걸어 "총기를 택배로 보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26개 업체가 "보내줄 수 있다"고 했고 나머지 4곳만 "반드시 총기를 직접 받아가야 한다"고 했다. 특히 20%인 6개 업체가 "총기를 택배로 보내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총포·도검·화약류 등 단속법에는 총포 취급자의 나이·전과 여부 등 자격규정만 있을 뿐 전달 방법에 대한 규정이 따로 없다. 이런 법규 미비의 허점으로 택배 과정에서 분실된 총기가 범죄에 이용되더라도 추적이 어려운 것이다.

허경미(許京美)계명대 경찰학과 교수는 "총기 구매자와 수령자가 동일인인지 판매업체가 반드시 확인하도록 법제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총포수렵협회 이종익(李鐘益)회장은 "지난해 말 각 회원사에 공문을 보내 택배·우편으로 총기를 보낼 경우 도난·분실의 위험이 있으니 되도록 직접 전달하라고 권고했다"고 말했다.

◇인터넷 총기 거래=이달 초 한 총기 관련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 어느 네티즌이 '물건 있습니다. 군용 베레타 권총과 실탄을 팝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금세 가격을 물으며 연락처를 남긴 글이 5건이나 붙었다. 이 사이트에는 최근 '실총(대부분 불법 총기임)을 구한다''실총을 판다'는 등의 글이 50여건이나 올라왔다. 10여개 총기·호신장구 인터넷 게시판에서도 불법 총기 거래에 관한 글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본지 취재팀은 최근 인터넷 사이트에 글을 올린 네티즌에게 직접 연락을 취해 만나봤다. 경기도 의정부시에 산다는 30대 초반의 이 네티즌은 "부산 밀수조직이 입수한 미군용 권총을 취급하는데 3천5백만원을 주면 권총과 함께 실탄·소음기를 함께 팔 수 있다"고 말했다.

◇총기범죄 급증=총기의 유통 관리가 허술함에 따라 총기 관련 범죄는 계속 느는 추세다. 1996년 개인 소유 총기를 경찰서에 보관토록 한 이후 국내 민간인 소유 총기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98년 44만여정이던 등록 총기류는 2001년 35만여정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총기 관련 사고는 98년 27건에서 2001년 54건으로 두배나 늘었다. 전문가들은 불법으로 유통된 총기류가 계속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許교수는 "우리나라도 더이상 총기 안전국가가 아니다. 당장 관련 법 개정이 힘들다면 현행법상 자격요건을 확대 해석해 유통단계에서부터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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