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인술로, 부인은 고아들 엄마로 …‘부부 봉사’ 17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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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ICA 시니어봉사단 소속 내과의사 이용만씨(오른쪽서 두번째)와 부인 박영례씨가 운영하는 고아원 아이들이 앞마당에서 이씨 부부에게 감사의 뜻으로 안마를 하고 있다. [카트만두(네팔)=신성식 기자]

“혈중 콜레스테롤이 너무 높아요. 내버려두면 심장병과 고혈압이 생깁니다.”

11일 오후 2시 네팔 수도 카트만두 외곽 티미시 한국-네팔 친선병원 1층 진료실. 한국국제협력단(KOICA) 시니어 해외 봉사단원 소속 내과 전문의 이용만(65)씨가 당뇨 환자 툴 구만 아드히카우(50·여)에게 검사결과를 설명했다. 그녀는 이씨의 소문을 듣고 네팔 북쪽 산악지역 트리슐리에서 왔다. 산에서 두 시간 걸어 내려와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8시간 만에 병원에 왔다.

조선대 의대를 나온 이씨는 1980년대 서울에서 잘나가는 개업의였다. 92년 겨울 아내 박영례(60)씨와 함께 퇴근하던 이씨는 서울 반포대교를 건널 무렵 ‘폭탄선언’을 했다. 해외에서 봉사의 삶을 살고 싶다고. 아내는 흔쾌히 동의했다. “경제적 부담 없이 살 수 있었지만 잘 먹고 잘사는 것만이 의미 있는 삶이 아니라는 생각이었습니다. ”

이듬해 12월 KOICA의 봉사단(정부 파견 의사)에 선발돼 방글라데시로 향했다. 닥치는 대로 환자를 진료했다. 어떤 때는 간단한 수술까지 했다. 비자 문제 때문에 97년 네팔 카트만두 인근 박타풀 국립병원으로, 지난해 9월 지금 병원으로 옮겼다. 일주일에 한 번은 도시빈민이 몰려 있는 천막촌으로 왕진을 간다.

이씨는 지난해 오른쪽 눈에 복시(사물이 두 개로 보이는 눈병)가 왔다. 5년 전 양 손에 다각화증(피부 각질층이 두꺼워져 찢어지는 병)에 걸렸다. 남편을 묵묵히 돕던 박씨도 봉사에 나섰다. 2002년 2층짜리 주택을 임대해 고아원 ‘시온의 집’을 열었다. 부모가 없거나 한부모 가정인 아이 12명을 ‘자식’으로 받아들였다. 못 먹고 못 배우던 애들이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세 명이 칼리지(한국의 고교 2, 3학년 과정)에 진학해 회계사·의사 등의 꿈을 키우고 있다. 퍼렉 라즈 초우라가이(19)는 “할아버지·할머니(애들은 이씨 부부를 이렇게 부른다)가 아니었다면 칼리지에 진학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두 분 덕분에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용만 내과의사가 당뇨 환자를 진찰하는 모습.

이씨 부부는 한국을 떠날 때 자녀들이 살던 아파트 한 채를 제외한 재산을 처분했다.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을 못하게 배수진을 쳤다. 이씨는 지금도 20년 전 양복을 입는다. 병원 직원들이 유니폼이라고 한다. 박씨는 둘째, 셋째 딸 결혼식 때 친구와 시댁 조카 한복을 빌려 입었다. 애들이 크면서 늘어나는 학비나 식비도 부담스럽다. 한 달에 최소한 200만원이 필요하지만 네 자녀가 보내는 돈(월 100만원)과 이씨의 월급(113만원)으로 턱없이 부족하다.

박씨는 이번 달부터 저소득층 노인 10여 명을 집에서 하루에 5시간 돌볼 예정이다. 그는 “즐겁지 않으면 이 일을 못한다. 여생을 여기서 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씨도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걷겠다”고 말했다. 부부는 한목소리를 냈다. “결코 가난하지 않아요. 부유합니다.” 시온의 집 후원 계좌는 366-810345627-07 하나은행, 예금주는 이혜경.

카트만두(네팔)=신성식 선임기자

◆한네친선병원=카트만두 인근 티미시의 유일한 현대식 병원. KOICA가 134만 달러(약 16억원)를 들여 지난해 4월 문을 열었다. 50병상이며 KOICA 봉사단원 의사·간호사 10여 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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