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戰은 러에 재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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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러시아와 미국이 이라크전이 끝난 뒤의 '전리품'(석유)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가운데 "이라크전은 러시아에 정치·경제적 재앙을 가져올 것"이란 주장이 제기됐다.

미국의 민간안보연구소인 스트랫포는 최근 '러시아, 무엇이 위기인가'란 제목의 특별보고서에서 "이라크전 후 국제유가가 폭락하면 러시아는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지난 22일 미·러 정상회담에서 "이라크에서의 러시아의 경제적 이익을 계속 보호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러시아는 이런 위기감 때문에 이라크전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붕괴 시나리오=스트랫포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라크전의 최대 희생양은 최근 높은 유가 덕분에 불안하나마 성장을 지속 중인 러시아 경제다. 경제 외에 체첸사태 악화 등 정치적 불안요인도 이라크전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보고서는 내다봤다.

시나리오의 출발은 미국이 전쟁 승리로 세계 2위의 석유 매장국인 이라크의 석유를 장악하는 상황이다.

보고서는 "미국은 전후 3∼4년 이내 하루 5백만배럴 이상으로 이라크 석유를 증산해 국제 석유시장을 저(低)유가체제로 재편할 구상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26달러 수준인 유가를 절반인 13달러선까지 낮출 계획이란 것이다.

이에 따라 원유·천연가스가 수출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러시아 경제는 곧바로 치명타를 받는다. 러시아 재무부는 "유가가 배럴당 20달러 이하로 떨어지면 재정이 파탄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보고서는 "러시아는 이라크전을 승인하는 대가로 ▶남부 국경에 인접한 중동 이슬람권의 반(反)러주의 ▶체첸사태 악화 등을 감수해야 한다"며 "경제붕괴·정치불안은 러시아 내 정치세력들이 '푸틴 이후'를 모색하게 만들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러시아의 자구책=전문가들은 러시아가 미국으로부터 이라크에서의 기득권 보장과 국제유가 안정에 대한 확실한 약속을 얻고 싶어한다고 보고 있다.

이라크 전쟁 중 단기적인 국제유가 폭등의 실익은 얻으면서도 이후 미국 주도의 이라크 석유 증산은 막겠다는 전략이다.

러시아는 또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정권과 맺은 이라크 서부 쿠르나유전(2백억달러 규모) 개발 계약과 1백20억달러의 대(對)이라크 채권 등 자국 지분을 유지함으로써 전후 안전을 보장받을 계획이다.

이와 관련, 워싱턴 포스트는 "미·러는 정상회담에서 이라크 전후 국제유가를 21달러선에서 지탱하기로 신사협정을 맺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스트랫포는 "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구체적인 약속을 내놓지 않아 푸틴 대통령이 이라크전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고 달리 분석했다.

정효식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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