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팻감 없애자" 제집 없앤 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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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

제11보

(236~251)=흑은 백 두점을 공짜로 잡고 또 선수다. 백이 236을 손빼면 흑이 A를 선수한 다음 바로 236 자리에 두어 거대한 백 대마가 잡히고 만다.

이 바람에 241마저 흑의 수중에 떨어졌다. 백이 이곳을 들여다보고 꽉 막으면 3집이 난다. 반대로 흑이 두게 되자 백은 나중에 B와 C, 두수의 가일수가 필요하게 됐다. 안팎으로 5집 내기나 되는 것이다. 인터넷 해설을 하던 서능욱9단이 "혹 역전된 것 아닌가"하며 고개를 갸웃한다.

"계속 횡재를 했지만 아직도 진 바둑이죠. 백이 그냥 끝내기만 하고 있으면 도저히 이길 수가 없어요."(조훈현9단)

좌상귀 패는 흑이 먼저 들어갈 수는 없다. 백만이 권리가 있다. 따라서 백은 끝내기를 하다가 맨 마지막에 가서 패를 결행하면 된다. 흑은 그걸 막기 위해 종래에는 자기 집을 없애지 않을 수 없다. 팻감을 없애기 위해 자기 집을 메워야만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좌상귀가 패 없이 '빅'으로 끝난다 하더라도 흑은 이 바둑을 이길 수 없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이미 심마(心魔)에 깊이 사로잡힌 뤄시허9단은 또다시 눈을 의심케 하는 일을 벌인다. 242를 보라! 팻감을 없앤다고 공배를 두고 있다. 그 사이 흑은 얼른 집을 번다.이번엔 246을 보라! 공배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자기 집을 없애고 있지 않은가.

상대가 겪어야 할 비극적인 일을 아쉬울 게 하나도 없는 뤄시허가 떠맡고 있으니 이런 기막힐 일이 다 있나. 조훈현9단은 귀신이 돕는 사람이란 생각이 이때 퍼뜩 머리를 스쳤다.

250으로 뤄시허는 드디어 폭탄을 터뜨렸다.

박치문 전문기자

daroo@joongang.co.kr

협찬:삼성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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