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수정 자녀 '아버지 친권' 법원 엇갈린 판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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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부부가 정자은행에서 제공받은 정자로 인공수정해 아이를 갖게 된 경우 남편은 아이의 친아버지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로선 정답이 없다. 법원에서도 이에 대한 판단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1997년 인공수정으로 아들(5)을 낳은 A씨 부부. 그러나 이들은 이혼을 하게 됐고, 부인은 정자은행에서 받은 정자로 낳은 아들과 남편이 친생자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해 달라는 소송(친생자관계 존부 확인 청구)을 법원에 냈다.

남편은 "아내와 합의해 다른 남자의 정자를 제공받아 아이를 낳았고, 내 호적에도 올렸으므로 아들에 대한 친권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울가정법원 가사9단독 홍이표(洪利杓) 판사는 "친생자 관계의 존재 여부는 자연적 혈연관계에 의해 정해지는 만큼 남편에게는 아들에 대한 친권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2000년 서울가정법원의 다른 재판부는 인공수정으로 낳은 아들과 아버지 사이의 친생자 관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었다.

당시 재판부는 인공수정으로 아들을 낳은 뒤 남편과 이혼한 B씨가 전 남편을 상대로 낸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청구소송에서 "현행 민법(제844조)은 '부인이 혼인 중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자녀로 추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만큼 부부가 합의를 통해 인공수정으로 낳은 아이도 남편의 자녀로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현재까지 정자은행에서 받은 정자로 출생한 자녀의 친생자 관계에 대한 대법원 판례는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 같은 경우 자연적인 친생자 관계가 아닌 것이 명백하지만 친생 관계를 부인하기에도 곤란해 이를 보완할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승현 기자

s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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