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화 시너지냐 李 대세론이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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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승리의 여신은 결국 민주당 노무현(盧武鉉)후보의 손을 들어 올렸다. 후보 단일화를 위한 사상 초유의 여론조사 대결에서 盧후보가 본선행 티켓을 거머쥠으로써 12월 대선은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후보와 盧후보의 양강(兩强)구도로 전개될 가능성이 커졌다.

1992년부터의 역대 대선은 과정과 결과에서 모두 드라마틱한 승부로 점철돼 왔다. 이번 대선 또한 2강(李·鄭) 1중(盧)→1강(李) 2중(盧·鄭)→양강(李·盧)의 파란만장한 통과의례를 거쳐 최후의 승자를 결정짓게 된 형국이다.

현재의 여론조사 지표로 보면 李·盧후보는 예측불허의 접전을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중앙일보의 23일 조사에서는 노풍(盧風)이 사그라든 이후 한번도 양자대결에서 李후보를 이겨본 적이 없던 盧후보(42.8%)가 李후보(37%)를 5.8%포인트 차이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타사의 여론조사 결과도 대부분 비슷했다. 단일화의 시너지 효과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는 모양새다.

때문에 이번 대선은 이런 '단일화 시너지'가 유지되느냐, 아니면 '이회창 대세론'이 재복원되느냐가 승부의 잣대가 될 전망이다.

盧후보 측은 우선 정몽준(鄭夢準)후보를 선대위원장으로 흡수하면서 李후보 측과 선명히 '세대교체'의 대립각을 세울 수 있다는 점을 기대하고 있다. 鄭후보는 결과 발표 직후 "깨끗이 승복하겠다. 盧후보의 당선을 위해 돕겠다"고 말함으로써 당초 예상과 달리 감정의 앙금을 걷고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단일화를 명분으로 그간 盧후보를 흔들어온 당 주변 비노(非盧)세력의 이탈 명분이 약해지면서 盧후보가 한층 안정적 국면관리를 할 수 있다는 점도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회의적인 관측도 만만치 않다. 盧·鄭후보의 단일화 합의 러브샷이 오고간 게 지난 16일. 이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단일화 과정에 모든 초점을 맞춰 온 때문에 李후보 지지도가 일시적인 하강국면을 맞았을 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鄭후보보다는 반창(反昌)연대의 결집력이 약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김종필(金鍾泌)총재와 이인제(李仁濟)의원, 후단협 소속 탈당파 의원의 盧후보에 대한 거부 정서가 워낙 골이 깊은 때문이다. 이는 향후 盧후보의 충청권 득표력과도 직결된 문제다.

단일화 이후 한화갑(韓和甲)대표와 한광옥(韓光玉)·정균환(鄭均桓)·박상천(朴相千)최고위원 등 범동교동계 중진의원들의 선택도 관심거리다. 특히 이들이 盧후보 적극 지지에 나설 경우 '김심(金心·김대중 대통령의 의중) 개입'에 대한 한나라당의 공세를 배제할 수 없을 전망이다.

'단일화 쇼크'에 휘청였던 한나라당으로선 일단 의원 영입에 박차를 가해 '반창연대'를 무산시키려 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盧후보의 진보적 성향을 문제삼아 대결국면을 보수대연합 대 盧후보의 고립구도로 몰고 갈 가능성이 크다. 한 당직자는 "한나라당 지지층의 응집력이 양강구도에선 더 강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영남출신인 盧후보로의 단일화로 지역구도도 다시 변수가 됐다. 호남 지역이 盧후보 지지로 쏠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반사적으로 이회창 후보 지지도가 가장 높은 대구·경북지역의 위기감이 어떤 형태로 귀결될지 주목된다.

최훈 기자

choi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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