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으로 '운동 부상' 다스리는 물리치료사 박영찬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79호 12면

박영찬 물리치료사는 인간의 몸에 최적의 움직임을 찾아주면 운동이나 나쁜 습관 때문에 생긴 질환 중 상당 부분을 치유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신인섭 기자

“타이거 우즈가 허리를 빨리 당기더라고요. 저렇게 (공을) 치다간 분명히 무릎에 이상이 올 텐데…”라고 생각했죠. 물리치료사 박영찬(35)씨는 골프선수 타이거 우즈의 스윙을 보고 무릎 부상을 예상했다. 그는 “우즈 선수는 허리가 유연한 대신 발목이 뻣뻣해요. 그래서 운동할 때 무릎에 부담이 생기는 거죠. 워낙 몸 전체가 유연해서 그 정도였지 다른 사람 같았으면 부상이 꽤 심각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자연치유력 지닌 몸, 최적 움직임 찾아주면 저절로 회복”

11일 오후 8시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 하늘스포츠의학클리닉 물리치료실에서 박영찬 실장을 만났다. 치료용 침대 5개가 나란히 놓인 치료실 한쪽에는 케틀벨, 기다란 막대 등 운동기구도 정리돼 있었다. 운동치료에 쓰이는 도구라고 했다. 수술전문병원·한방병원 등의 물리치료실을 거쳐 1년 반 전에 현재 병원으로 온 박 실장은 10년째 물리치료사로 일하면서 지금까지 하루 평균 30명씩 10만 명이 넘는 환자를 봤다고 했다. 그는 “여러 병원에서 근무한 덕분에 많은 환자들을 볼 수 있었어요. 뇌성마비·발달지연 환자부터 척추측만증 환자나 운동선수까지 치료했죠. 덕분에 수많은 데이터와 경험을 얻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타이거 우즈 스윙 보고 무릎 부상 예상
박영찬 실장은 만능 스포츠맨이다. 골프·축구·야구·테니스·배드민턴 등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운동은 대부분 할 줄 안다. 운동을 하다 부상을 입고 병원에 오는 환자의 잘못된 습관을 알아야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에는 춘천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5시간에 걸쳐 풀코스를 완주했다. 대회에 나가기 위해 수개월 동안 마라톤 연습을 했다. 그는 “지난해 마라톤 붐이 불다 보니 마라톤 때문에 병원에 오는 환자가 늘어났어요. 그래서 직접 도전했어요”라며 “역시 직접 뛰어보니까 무엇 때문에 부상을 입고 아프다고 하는지 알겠더라고요”라고 했다. 다리를 벌리고 뛰거나 등을 구부리고 뛰는 자세, 팔 흔들림이 너무 큰 경우에 부상을 많이 입을 수 있다고 지적하는 박 실장은 “조그만 문제도 4~5시간 계속해서 뛰다 보면 아주 크게 나타나게 돼 있어요. 운동을 할 때엔 자기 몸을 정확히 알고 대비해야 해요”라고 했다.

그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가능한 움직임의 범위가 있는데 성장 환경이나 습관 등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서 그 움직임에 문제가 생겨 몸에 이상이 오게 된다고 했다. 자신이 하는 치료는 ‘그것(우리 몸이 가진 최적의 움직임)을 회복시켜 스스로 몸을 관리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실장은 환자를 치료할 때 가장 먼저 쪼그려 앉기나 누워서 일어나기 등 기본적인 동작을 시킨 후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한다. 환자가 어느 범위까지 움직임이 가능한지 진단하기 위해서다. 겉보기엔 쉬워 보이는 동작이라도 막상 해 보면 안 되는 것이 많다며 가능한 운동의 범위를 보면 환자의 상태를 알 수 있다고 했다.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면 그에 알맞은 치료와 운동을 처방한다. 이때 박 실장은 문제가 생긴 몸의 한 부분에 바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연관된 다른 부분부터 치료한다.

“전통적인 물리치료에선 아픈 부분에 직접 치료를 하지만 저는 다르게 접근해요. 허리가 아파서 저한테 온 환자가 있다면 곧바로 허리 치료를 하지 않아요. 어깨나 다리에 문제가 있으면 팔, 다리를 움직일 때 척추뼈에 영향을 주거든요. 그래서 팔이나 다리의 움직임을 먼저 살펴보고 거기부터 치료를 하는 거죠.”

이어 그는 “우리 몸은 자연 치유력을 가지고 있어 문제가 생긴 부분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게 막으면 자연스럽게 치유가 될 수 있어요. 대신 문제가 생긴 부분 때문에 다른 부분에 무리가 가요. 저는 그 부분을 치료하거나 운동으로 단련시키는 것이죠. 제 역할은 사람들 몸의 자연치유를 돕는 거라고 생각해요”라고 자신만의 치료법을 설명했다.

신체 각 부분의 연관성에 대해 설명하던 그는 3년 전 치료했던 육상선수의 사례를 들려줬다. 경기도의 한 시청 소속의 육상선수가 게임만 끝나면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며 박 실장을 찾아왔다. 박 실장은 선수의 증상을 들은 후 몇 가지 기본적인 움직임을 시켰다. 그런데 선수가 쪼그려 앉는 자세를 하지 못했다. 그는 “쪼그려 앉는 자세가 안 되는 것은 기본적인 몸의 균형이 잡히지 않았다는 것이거든요. 육상선수라 허벅지 굵기는 굉장했어요. 그런데 상대적으로 종아리 근육이 약했죠. 그래서 허리에 과부하가 걸렸던 거예요”라며 아픈 허리를 먼저 치료하지 않고 종아리 근육을 늘리는 운동치료를 진행했다고 했다. 치료를 받은 후 통증이 사라진 선수는 전국체전에서 자신의 최고기록을 1초 앞당기며 금메달을 따게 됐다.

박 실장은 대부분의 우리나라 운동선수들이 비슷한 상황이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기술을 습득하는 데만 급급해 몸의 균형 잡힌 움직임에 대해선 소홀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박 실장은 그래서 선수들이 부상을 많이 입고 생명이 짧다며 아쉬워했다.

치료실 한쪽에는 2㎏부터 24㎏까지 다양한 무게의 케틀벨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케틀벨 운동은 러시아에서 시작돼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이후 세계에 알려진 후 2000년대 들어 미국이나 유럽에서 유행했다. 우리나라는 이제 시작하는 단계다.

3년 전 케틀벨 운동법을 접한 뒤 치료에 적용하고 있다는 박 실장은 짧은 시간에 가장 효과적으로 운동할 수 있는 운동법이라고 말했다. 케틀벨 운동법 중 ‘get up(누운 자세에서 한 손에 케틀벨을 들고 일어서는 동작)’을 치료에 이용한다. 케틀벨 운동에 물리치료를 적용해 박 실장만의 케틀벨 치료 프로그램을 개발한 것이다.

전신마비 환자서 물리치료사로
“‘get up’이란 동작은 갓 태어난 아이가 자라면서 두 발로 서기까지의 과정을 압축해 놓은 동작이에요. 온몸의 근육을 모두 써야 하는 운동이죠. 일어나는 과정에서 팔이나 다리, 무릎, 허리 중 문제가 있는 부분이 그대로 드러나게 돼 있어요. 케틀벨 운동법으로 몸에 문제가 있는 부분을 찾고 치료까지 할 수 있죠.” 그는 최근에는 척추 측만증 환자들에게 케틀벨을 이용한 운동치료를 시키고 있는 데 효과가 좋다고 했다.

15년 전 박 실장은 ‘식물인간’이나 다름없는 상태를 겪었다. 20세 때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트럭과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다. 두 달 반 동안 전신이 마비된 상태로 병원에 누워 있었다. 사고 전 벤치 프레스 150㎏을 쉽게 들 정도로 운동을 잘 했던 그에겐 큰 시련이었다. 하지만 친구들의 도움으로 조금씩 몸을 회복해갔다. 처음에는 한 팔로 기어다니다 시간이 지나자 발의 신경이 돌아왔다. 결국 2년에 걸친 재활 끝에 완전히 몸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는 “그때 병원에서 물리치료사란 직업을 처음 알게 됐어요. 내가 당해보니까 얼마나 중요한 직업인지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퇴원한 뒤 물리치료학과에 진학했죠”라고 물리치료사가 된 계기를 얘기했다.

10년째 물리치료사로 살면서 사람들이 불편함 없이 몸을 쓸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을 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는 그는 “의료인은 강자예요. 몸이 아픈 환자는 약자일 수밖에 없죠. 저도 몸을 다쳐봐서 알아요. 환자 입장에서 생각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파악해 신뢰를 주는 치료사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