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 벽돌에 제작자 이름 새겨 품질 보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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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호 20면

지리적 표시제의 기원은 고대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곳에서 벽돌 제작자들은 피라미드 건축에 사용된 벽돌에 벽돌공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문제가 생기면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지를 가리기 위해서다. 벽돌공의 이름은 곧 벽돌의 원산지를 의미했고, 이는 벽돌의 내구성과 관련됐다. 라틴어로 ‘각인시키다’를 뜻하는 ‘브랜드’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고대 이집트 때부터 시작

고대 그리스에서도 지리적 표시제가 품질에 대한 표지로 사용됐다. 에게해 섬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산지 중 하나다. 페니키아 문화, 이집트 문화와 근접한 곳으로 에게해 섬들은 고대 포도 재배가 지중해를 건너 서진(西進)할 때 그 첫 번째 정착지가 됐다. 에게해 북쪽에 자리 잡은 타소스(Thasos)섬에서 생산된 와인은 그 고아한 풍취로 값을 더 받기도 했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15세기부터 직간접적으로 지리적 표시제를 시행했다. 프랑스의 왕 샤를 6세는 1411년 로크포르(Roquefort) 마을의 주민들에게 ‘로크포르 치즈’의 유일한 저장고인 콩발루(Combalou)산의 천연 석회암굴을 독점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고 이 저장고에서 숙성된 치즈만 로크포르 치즈로 인정했다. 로크포르 치즈는 스틸턴·고르곤졸라와 함께 세계 3대 블루치즈로 꼽힌다.

1919년에는 원산지 명칭을 집단적 지적재산권으로 규정하는 법을 만들었다. 특히 와인에 대한 ‘원산지 명칭 보호(AOC) 제도’를 자체적으로 개발했다. 20세기 초 외국산 포도 및 포도주가 대거 유입되면서 품질이 나빠지고, 가격이 폭락하고, 원산지를 불분명하게 표시하는 등의 사태가 발생하자 정부가 자국 와인산업 보호에 나선 것이다. 포도 재배 원산지, 알코올 도수, 포도 품종, 재배·저장법, 생산량 제한 등으로 와인 제조 기준을 규정했다. AOC를 통해 프랑스 와인산업은 부흥을 이뤘다. 1955년에는 치즈에 대한 보호체계를 확립했고, 90년부터 모든 농산물 및 식료품에 대해 AOC를 확대 적용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프랑스 등 회원국과는 별개로 1992년 ‘농산품과 식료품(가공품)에 대한 지리적 표시 및 원산지 명칭 보호에 관한 이사회 규칙’을 제정했다. 이 규칙에서는 지리적 표시를 두 가지 형태로 보호한다. ‘지리적 표시 보호(PGI)’와 ‘원산지 명칭 보호(POD)’다. PGI는 원료의 생산과 가공과정 모두가 해당 지역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POD는 원료의 생산·제조 및 처리과정 중 어느 하나라도 지역과 연계성이 있으면 보호 대상이 된다. 현재 EU에서는 5000여 개의 품목이 지리적 표시제로 등록돼 있다. EU가 다른 나라와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벌일 때 지리적 표시 인정 여부를 주요 협상 조건으로 내세우는 이유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지리적 표시에 대한 보호가 약하다. 지리적 표시의 인정 요건 중 ‘역사적으로 그 지역 상품이 유명했다’는 것을 입증할 만큼 역사 자체가 길지 않기 때문이다. 별도로 관리 감독 기관을 두거나 규정을 정하지 않고 일반 상표법 내에서 지리적 표시를 보호하고 있다. 일본은 상표법에 지리적 표시에 관한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다만 이와 유사한 ‘지역단체상표제도’를 보호 수단으로 삼고 있다. 이 제도는 각 지역의 브랜드를 적절하게 보호해 사업자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한국은 농산물품질관리법에 지리적 표시 등록제도와 상표법에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제를 운용하고 있다. 각각 관할 관청이 농림수산식품부와 특허청으로 구분된다. 특허청 판현기 사무관은 “농산물품질관리법에서는 지리적 표시 보호 대상이 농산물 및 가공품에 한해서만 적용되지만 상표법에서는 공산품까지 포괄한다”며 “전자가 상품의 품질 보호에, 후자가 상품의 명칭 보호에 적합한 제도인 만큼 상호보완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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