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도 러시아의 문화 마케팅 배워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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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호 24면

최근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국민의 관심이 모아졌다. 우리의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될 반가운 소식이다. 그런데 비단 특정 지역뿐 아니라 도심 전체가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곳이 있다.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가 그렇다.

송기홍의 세계경영

레닌그라드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이 도시는 18세기 초 네바강 유역 늪지에 ‘유럽으로의 창’을 열기 위해 건설한 인공도시다. 500여 개의 다리로 연결된 아름다운 운하 도시로 북방의 베네치아로 불릴 만큼 절정의 풍광과 정취를 자랑한다. 고풍스러운 외관에 문화적 깊이가 더해져 다른 지역이 따라올 수 없는 독특한 품격을 자아낸다.
수백만 명의 관광객과 시민들로 넘쳐나는 도심에는 루브르·대영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에르미타주가 있다. 제정러시아 시절 군주가 유럽 각지에서 값비싼 미술품을 사들여 혼자 감상했다고 해서 은둔처라는 뜻의 이름이 붙었다. 한때 재정파탄의 주범으로 비난받았으나 현재는 막대한 관광수입의 원천이 되고 있다.

러시아에는 에르미타주 외에도 다수의 세계적인 미술관과 문화상품이 존재한다. 트레치아코프 미술관과 국립 러시아 미술관은 세계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19세기 러시아 화가들의 작품을 주로 전시하면서 세계 곳곳의 미술애호가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볼쇼이 발레를 보면 인간의 몸짓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에 경외심을 느끼게 된다. 도스토옙스키나 톨스토이 같은 러시아 문호들의 작품은 인간 내면에 대한 심오하고 섬세한 묘사로 오늘날까지도 사랑받고 있다. 러시아 문화예술의 깊이와 힘을 느낄 수 있는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바야흐로 융복합의 시대다. 최첨단, 고부가가치 상품일수록 문화와 기술의 적절한 결합이 이뤄져야 하며, 콘텐트와 기기가 융합된 고객 경험을 팔아야 한다. 아이폰의 성공이 대변하듯 더 이상 껍데기를 파는 사업으로는 1등이 될 수 없다. 우수한 품질과 성능의 제품을 착한 가격에 파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그보다는 혼이 담긴 제품을 만들고 열광적인 지지층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은 유구한 역사와 뿌리 깊은 문화적 전통을 가진 나라다. 우리의 저력은 남들이 모방하기 힘든 문화적 전통과 민족 혼, 아름다운 자연이 녹아 있는 상품과 서비스 개발로 이어져야 한다. 일반 제품을 저렴하고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는 후발주자들은 이미 도처에 산재해 있다. 값싼 원료와 노동력으로 승부하는 중국과 동남아 업체들의 공세에 효율성과 원가절감 노력만으로 대응하려 하는 것은 승산 없는 싸움이다.

그보다는 문화적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데 승부수를 던질 필요가 있다. 비슷한 품질에 무형의 가치를 더해 가격을 높여 받는 데 성공한 대표적 사례가 샴페인이다. 일반적으로 발포성 포도주를 샴페인이라고 부르지만 엄격하게는 프랑스 샹파뉴 지방에서 생산된 포도주에만 샴페인이라는 명칭을 쓸 수 있다. 이는 일찌감치 문화상품의 가치에 눈을 뜬 프랑스 정부가 제1차 세계대전 후 베르사유 조약에 이 내용을 명시했기 때문이다. 샴페인이라고 이름 붙은 제품들은 맛이나 품질과 무관하게 다른 지역 와인에 비해 보통 두 배에 달하는 가격에 팔린다. 이름과 전통, 분위기가 결합돼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요즘 막걸리가 각광을 받으면서 수출도 하고 있지만 팔리는 가격을 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수백, 수천 달러를 호가하는 고급 와인을 당장 따라잡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최소 수십 달러 이상의 명품 막걸리 개발을 고민해야 할 때다. 현실적인 해답은 제품에 혼과 문화를 담아내는 데에 있다. 한국적 명품을 준비하는 다른 분야에서도 눈 여겨 봐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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