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과장수 한나라당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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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호 29면

좌우 일직선으로 뻗은 한여름의 바닷가 백사장. 같은 아이스크림을 파는 장수 두 명이 있다. 피서객들은 가장 가까운 장수에게서 사먹으려 한다. 그럼 두 아이스크림 장수는 각각 어디에 좌판을 벌여야 가장 많은 손님을 끌 수 있을까.처음엔 서로 멀리 떨어져 장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둘은 자연스럽게 백사장 한복판에서 서로 등을 맞대고 장사하게 된다. 그렇게 둘은 각각 백사장 왼쪽 또는 오른쪽의 피서객을 자기 손님으로 확보한다. 백사장 한가운데가 두 아이스크림 장수에겐 매출 극대화를 위한 입지라는 것이다.

남윤호의 시장 헤집기

이게 미국의 통계학자 해럴드 호텔링(1895~1973)의 설명이다. 그가 예로 든 두 아이스크림 장수의 경우 입지의 차별화가 이뤄지지 않는다. 이를 ‘최소 차별화’라고 한다.
물론 소비자들에겐 불편하다. 아이스크림을 사먹기 위해 걸어야 하는 거리는 짧을수록 좋다. 그렇다면 백사장을 좌우로 삼등분하는 지점에 아이스크림 장수가 한 사람씩 있어야 피서객들의 전체 이동거리가 짧아진다. 아이스크림 장수 둘 사이의 경쟁 때문에 피서객들은 뜨거운 백사장을 더 걸어야 하는 셈이다.

호텔링의 원리는 기업들의 경쟁에서 곧잘 나타난다. 라이벌 백화점들이 중심가에 마주보고 영업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항공사들이 인기 노선의 출발시간을 서로 엇비슷하게 잡아놓는 것도 그렇다. 띄엄띄엄 띄우면 소비자의 선택 폭도 넓어질 텐데, 자기들끼리 경쟁하는 통에 비슷하게 집중되고 만다. 경쟁자들이 서로 차이를 줄이려는 ‘최소 차별화’ 전략을 쓴 결과다. 비용구조가 비슷하고 경쟁이 치열한 업종일수록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

정당정치도 이런 원리로 풀이할 수 있다. 좌파 또는 우파의 정당이라 해도 선거를 치르다 보면 서로 중앙으로 몰려든다. 더 많은 표를 얻기 위해서다. 해수욕장의 아이스크림 장수들이 백사장 한가운데서 만나는 거나 같다. 이를 인중정당(引衆政黨:catch-all party)이라고 부른다. 국민 전체를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정당이다.

이런 관점에서 요즘 한나라당의 움직임은 다소 의외다. 포퓰리즘에 가까운 강력한 친서민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게, 마치 백사장 가운데서 왼편에 있는 손님들을 향해 움직이는 아이스크림 장수와 비슷하지 않나. 원래 왼편에서 영업하던 아이스크림 장수에게 손님이 많이 꼬이는 걸 보고 따라온 것일까. 왼편으로 조금 움직여도 어차피 오른편 손님들은 자기에게 올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했을 거다.

이러면 오른편 백사장의 손님들, 난감해진다. 아이스크림 사먹으러 뜨거운 백사장을 더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두 가지. 우선 백사장 오른편으로 갈수록 안 먹고 말지, 하며 입맛을 접는 사람들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이어 그런 잠재수요를 노리고 오른편 백사장에 새로 좌판을 펴려는 아이스크림 장수가 등장할 수도 있다. 아이스크림 장수와 한나라당의 입지 선택, 어느 쪽이 현명한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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