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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진정한 사죄만이 과거사 털 수 있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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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난해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고 출범한 민주당 정권은 과거를 직시하는 용기를 바탕으로 새로운 한·일 관계를 정립한다는 태도를 거듭 천명하며 한국 중시 외교를 강조해 왔다. 그러나 간 총리의 담화 발표에 이르기까지는 한국에 대한 사죄 외교를 그만두라는 민주당 내의 일부 반발은 물론 자민당을 비롯한 보수세력의 만만치 않은 저항이 표출되었다. 7월 참의원 선거에서 패배한 데다 9월 대표 선거를 앞두고 있는 간 총리로서는 담화 발표가 결코 쉽지만은 않은 결단이었다. 병합 100년의 해를 맞이하여 미래 100년의 한·일 관계를 여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려는 간 정권의 노력은 적극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번 담화에서 무엇보다 관심을 끌었던 대목은 식민화 과정에 이르는 일련의 구(舊) 조약의 강제성 및 불법성을 어느 수위로 표현할 것인가에 있었다. 간 담화는 “3·1운동의 격렬한 저항에서도 나타났듯이 군사적·경제적 배경하에 당시 한국인들은 그 뜻에 반하여 이뤄진 식민지배”라는 문구를 사용했다. 이는 간접적이나마 병합조약이 한민족의 의지에 반해 강제적으로 체결되었다는 점을 시인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한·일 관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사죄 표명으로 언급되어 온 1995년 무라야마 담화에 비해 이번 간 담화가 나름 일보 전진으로 평가할 수 있는 이유이다.

1910년 병합조약의 불법성을 인정할 경우, 35년간의 식민지배 과정 전체가 국제법적인 배상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법리적 논란을 우려하는 일본 정부로서는 최대한 법률적인 의미가 배제된 어구를 선호했을 것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이 알아야 할 것은 한국이 요구하고 있는 과거사 청산의 요체는 경제적 차원의 배상 요구라기보다는 정신적 차원의 역사 청산이라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한국 정부는 2005년 한·일회담 외교문서 전면 공개를 계기로 입법조치를 통해 한·일청구권협정에서 미흡하게 다뤄진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위로금 지급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만약 일본 정부가 식민화 과정의 강제성·불법성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죄한다면 한국 정부는 물질적 차원의 추가적 배상·보상 요구를 제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필자는 확신한다. 21세기 한·일 관계의 미래를 새롭게 설계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진심 어린 과거 직시(直視) 자세와 한국의 관용정신이 요구되며 이러한 바탕하에서 비로소 한·일 간의 역사 화해가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