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기여입학제' 가속도 붙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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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대학 기여입학제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붙을 전망이다. 진원지는 연세대다. 지난해 3월 정부에 기여입학제 도입을 건의해 논란을 일으켰던 연세대는 지난 4월 부산에서 3당 정책책임자를 초청해 기여입학제 토론을 벌이는 등 그동안 분위기 조성에 앞서왔다. 또 19일에는 교육 당국의 불가 방침에도 불구하고 내년도 입시부터 기여입학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밝히면서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쟁점화할 태세다.

기여입학제 도입 문제는 1986년 이후 수시로 제기돼 왔다. 사립대 발전을 위한 재정 확충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그때마다 반발에 부닥쳐 논의가 유보됐다. 국민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게 주된 반대 논리였다. 그러나 최근 대학 사회를 중심으로 기여입학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시기가 됐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의 대학 재정상태로는 경쟁력 확보에 한계가 있다는 위기위식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왜 기여입학제인가=외국 대학의 예산 규모는 국내 대학보다 미국이 10배, 일본이 4배 정도다. 국내 대학의 열악한 재정으로는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장기 비전은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푸념이 나오는 배경이다.

제대로 대학을 운영하기 위한 핵심은 결국 돈이라는 게 대학 사회의 공통된 인식이다. 그래서 각 대학들은 기부금 모금에 사활을 걸고 있다. 총장의 능력이 기부금을 얼마나 끌어모으느냐에 따라 평가되는 실정이다.

그러나 기부 문화가 정착돼 있지 않은 국내 사정상 대학의 기부금 모금은 형편없는 수준이다. 국내 98개 사립대들이 지난해 거둬들인 기부금 총액(8천5백6억원)이 미국 하버드대 한 곳의 2000년 9월∼2001년 6월 기부금(약 8천2백억원) 수준에 불과할 정도다. 대학에의 기부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인센티브제인 기여입학제가 도입돼야 한다는 주장은 그래서 나온다.

연세대 오인탁 교수는 "기여입학제는 본질적으로 학생선발 제도가 아니라 대학교육 발전제도"라며 "기여를 통해 조성되는 기금으로 대학의 질적 성장을 위한 재원을 마련할 뿐 아니라 이를 통해 우리 사회에 기여 의식과 행위가 좀 더 두텁게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본지가 지난 7월 전국 76개 대학 총장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75%에 해당하는 57명의 총장들이 기여입학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여전히 거센 반발=기여입학제에 대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반발의 목소리도 높은 게 현실이다.

한국교육개발원 김흥주 기획처장은 "기여입학제를 통해 재정을 확충할 수 있는 대학은 극히 일부여서 대학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숙명여대 송기창 교수는 "입학제도는 수학능력 적격자를 뽑는 것이지 재정 확충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며 "재정 확충은 수익사업 등 다른 수단을 통해서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망=당장 도입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그러나 지난 2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비전 2011'을 통해 대학발전을 위한 기여입학제 허용을 건의한 데 이어 당시 진념 경제부총리도 이를 거들고

나오는 등 정부 내에서도 긍정적 의견이 존재하고 있어 부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지적이다. 교육부 내에서도 대학입시가 자율화되면 그때가서는 자연스럽게 허용 문제가 검토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재계에서도 긍정적인 입장이다. 대한상의 박용성 회장은 "현재의 열악한 대학 재정을 갖고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며 "등록금을 마구 올릴 수도 없고 정부지원금을 늘릴 수도 없는 상황에서 기여입학제는 대학재정 확충의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도입에 1백10% 찬성한다"고 말했다.

대학 사회에선 시민단체 등이 참여한 대학별 기부금관리위원회 운영을 통해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고 정원 외로 기여입학을 허용해 다른 학생에게 피해가 없는 만큼 앞으로 교육부가 전향적으로 기여입학제 허용 여부를 검토할 것이란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기여입학제는 공정한 운영과 투명성 확보가 관건이라는 얘기다. 정성기 포항공대 총장은 "기여입학제는 사립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며 "대학도 지나친 상업성을 스스로 자제하고 기여입학제 등을 통해 마련되는 재정이 주로 인건비 인상과 같은 집단 이기주의적 용도가 아닌 연구경쟁력과 교육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효율성과 책임성을 갖고 예산 집행을 해 사회의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남중·정현목 기자

njkim@joongang.co.kr

<기여입학제 관련 일지>

▶1986년 12월=교육개혁심의위, 사학 발전책 일환으로 도입 검토. 시기상조·국민정서 이유로 유보.

▶88년10월=노태우 대통령 지시로 허용 여부 검토.

▶89년 2월∼91년 8월=한국대학교육협의회·전국대학 교무처장회의, 잇따라 도입 건의.

▶91년 10월=대교협, 고등교육연구회 주최 토론회에서 찬·반 양론 대립. 심도있는 연구 필요성 제기.

▶91년 11∼12월=고등교육연구회 주관 두차례 공청회서 구체적 시행방안 논의.

▶91년 10월=교육부, 국정감사에서 여론수렴 전제로 도입 검토 입장 표명.

▶92년 4월=고등교육연구회, 구체적 시행방안 연구 제시.

▶93년 7월=오병문 교육부장관, 대교협 총회에서 "자율 능력 있고 학사행정제도 확립 대학에 한해 허용 전향적 고려"표명. 이후 일부 사립대 입시부정 사건으로 논의 중단.

▶97년 2월=사립대 총장협의회에서 고려대 홍일식 총장, 정원외 1∼2%선에서 허용 요구.

▶2001년 3월=연세대 김우식 총장, 교육부총리에게 기여입학제 도입 건의. 교육부총리, 불가 재천명

▶2002년 2월=한국개발연구원(KDI) '비전 2011'에서 허용 건의.

▶2002년 11월=연세대 2004학년도 입시부터 도입 추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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