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직전 왜 귀국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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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의 귀국에 따라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통령후보의 현대전자 주가조작 연루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활기를 띠게 됐다.

1999년 서울지검 특수1부는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을 수사해 李전회장 등을 구속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서울지검 형사9부가 민주노동당이 주가조작 공범 혐의로 鄭후보를 고발한 사건을 배당받아 본질은 같지만 다른 각도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귀국했나=李전회장이 귀국한 외견상 이유는 자신의 두 아들과 관련한 병역비리 혐의를 조사받기 위해서다.

그는 병역비리 혐의로 지명수배를 받아온 상태였다. 그러나 좀더 검찰 출두를 미룰 수 있는 아들의 병역비리 조사 때문에 그가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미묘한 시기에 자진 귀국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李전회장은 지난 16일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오면서 "억울함과 진실을 밝히기 위해 귀국했다. 도쿄에서 한 말은 모두 사실이며 주가조작뿐 아니라 鄭후보와 관련된 다른 건도 함께 밝히겠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귀국과 대선은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주가조작에 대해 전혀 엉뚱한 말을 하는 분이 대통령이 되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되느냐"며 鄭후보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鄭후보의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폭로한 지난달 27일 도쿄 회견에서는 "관련 증거는 없다"고 말했지만 이번에는 "증거가 있다. 곧 구체적인 것을 내놓겠다"며 발언 수위를 더욱 높였다. 자신의 귀국이 鄭후보와 관련돼 있음을 시사한 대목들이다.

◇수사 전망=李전회장이 자신의 말대로 鄭후보가 현대전자 주가조작에 연루됐다는 구체적 증거를 제시한다면 수사는 급진전할 것이다.

또 주가조작을 위해 현대중공업 자금 1천8백여억원을 현대증권에 지원한 실무 책임자인 이영기 전 현대중공업 부사장 등의 진술이 수사의 방향을 결정할 전망이다.

99년 수사에선 李전회장과 李전부사장이 "위에는 보고하지 않고 현대중공업을 동원해 주식을 샀다"고 진술했다.

만일 李전부사장이 그때와 다른 진술을 하면 사건의 파장은 커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鄭후보가 직접 조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李전부사장은 현재 가족과도 연락이 닿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검찰 출석 여부는 불투명하다.

李전회장은 또 2000년 현대상선의 4천억원 대출 의혹과 관련해 당시 현대그룹 상황을 증언해 줄 수 있는 주요 참고인이다. 현재 李전회장은 "이 부분에 대해선 아는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현대그룹의 실력자였던 그의 위치를 감안할 때 뜻밖의 진술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원배 기자

oneb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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