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순위에 호들갑 떨지 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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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올해도 어김없이 인사고과 철이 왔다. 수없이 해 왔지만,"한 일이 뭐냐""그 일을 스스로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머뭇거리는 건 여전하다. 평가는 남이 하는 것이고 자평(自評)이란게 '한국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윗사람이 내린 평점이 신통찮으면 기분이 좋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다.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외국기관들이 국가경쟁력 순위를 발표한다. 이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한다. 특히 '윗분'이 국내의 좋은 평가는 아예 접고 외국의 호평에 귀를 쫑긋거릴 때는 국가 순위가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다.

국가 순위가 내려가기라도 하면 "우리는 경제위기를 극복했다""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 운운한 사람들로서는 영 체면이 서지 않고, 나름대로 나라를 바로 세우려 애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서는 속이 뒤집힐 일이다. 그렇지만 어쩌는가. 그렇게 보인다는데.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장래를 손 안에 쥔듯 영향력이 커져 때로는 거만하기까지한 이들 외국평가기관에 관해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다. 비록 오랫동안 공신력을 쌓기는 했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민간기관이라는 점이다. 국가등급을 매겨 그 정보가 필요한 고객들에게 팔아 먹고 사는 장사꾼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렇다고 한국 실상을 잘 모른 데서 나온 것이라고 그들의 평가를 깎아내리기만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국가신용도가 내려가 외국에서 돈을 꿀 때 이자를 더 내야 하고, 국가경쟁력 순위가 떨어져 외국인투자가 줄어드는 게 겁나서가 아니다. 그들 얘기가 대부분 사실이라서 그렇다.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이 우리가 그동안 수없이 얘기해 오던 것이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왜 그렇게 국가 순위 같은 것에 휘둘리느냐"고 할 정도로, 이번에도 우리는 대서특필과 사설로 호들갑을 떨었다. 같은 얘기도 외국인이 하면 값을 더 쳐주는 건 정부도 마찬가지다. 웬만해선 민간 얘기에 꿈쩍 않다가 꼭 외국인이 얘기해야 겨우 움직이는 척한다.

그 평가기관들이 지적하는 걸 한번 보라.우리 스스로가 이미 누누히 지적해 온 것 아닌가. 얽히고 힌 정부규제, 불투명한 경영관행과 뒤진 지배구조, 겁나는 노사쟁의와 경직된 노동시장 등은 너무 자주 얘기해 이젠 진부하게 들릴 정도다. 우리 문제는 우리 자신이 너무나 잘 안다. 그 해결로의 길에 흐트러짐 없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면 그만이다.

외국인의 평가에 일희일비할 게 아니다.우리 스스로의 말에나 귀를 기울이자.

econop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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