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고교과정'학림학교']형편 어려워 학업 포기한 학생들 교육 교사들, 대안학교 세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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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부산·경남지역 중·고등학교 교사 1백50여명이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무료로 운영하는 고교과정의 대안학교를 설립했다.

지리산 자락인 경남 산청군 단성면 호리 옛 금만초등학교 백곡분교에서 개교 준비를 마치고 내년 신학년도 신입생들을 모집 중인 학림학교(hakrim4u.com.ne.kr)가 그곳이다.

이 작업은 1998년 5월 부산 남성여중 박재수(朴載守·54)·부산 거성중 박해성(朴海成·47)교사 등 부산·경남지역 교사 10여명이 시작했다.

이들은 고등학교를 중도에 그만두는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대안학교를 세우자는 데 뜻을 모은 뒤 곧바로 '대안학교 설립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지리산 자락의 산골 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이던 부친께서 싸리비를 직접 만들어 판 돈을 화전민 자녀들의 학자금으로 사용했다는 박해성 교사의 기억도 이들에게는 큰 힘과 격려가 됐다.

시작 당시 10여명의 교사가 매달 1만원씩 기금을 모아왔는데 4년이 흐른 요즘엔 1백50여명의 교사가 참여하고 있고, 후원자도 1천여명으로 늘어났다.

교사와 후원자들은 지난해 11월 그동안 적립된 1억2천여만원으로 지리산 자락의 폐교를 매입했다. 1년여에 걸친 보수공사 등 준비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으며 내년 초 개교를 앞두고 있다.

폐교를 매입할 때 자금이 부족해 일부 교사들은 수백만원까지 대출받아 기금을 선납했다. 20여명의 내년 첫 신입생은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며 등록금·식비·옷값 등 비용 전액을 교사와 후원회원들이 모은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개교 소식이 알려지면서 모 의류업체에서 학생들이 입을 옷을 제공하겠다고 나섰고, 컴퓨터·책상 등 비품의 기증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입학자격은 일반 학교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중단한 중학교 졸업자격을 가진 학생으로 제한했다.

교과 과정도 특이하다. 오전에는 일반 고등학교와 흡사하게 학과 위주로 진행하고 오후에는 농사짓기·선비정신 쌓기·명상수련·예절 교육·고적답사·불우시설 방문·야생화 연구 등을 한다. 학기마다 한차례씩 3박4일 동안 지리산 종주를 해 자립심과 호연지기(浩然之氣)도 키운다.

교과 수업은 고교졸업자격 검정고시 합격을 목표로 이뤄진다. 강의는 학교에 상주할 전임교사 3명과 후원 교사들이 돌아가며 맡는다. 주중에는 경남지역 교사 30여명이 나서고 주말에는 부산지역 교사 1백20여명이 임무를 교대한다. 후원자들 가운데 전문가를 초청해 다양한 특강도 한다.

설립추진위 측은 학생들이 졸업하면 후원회원 등이 운영하는 기업에 취업을 알선하고 대학에 진학할 경우 전액 장학금을 지원하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 학림학교 설립추진위원장인 박재수 교사는 "야간학교는 물론이고 일반 대안학교에도 갈 수 없는 가난한 학생들을 수용할 곳이 전혀 없는 현실이 안타까워 이 작업을 시작했다"며 "학업 위주가 아니라 전인교육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055-973-9723.

산청=김상진 기자

daed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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