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對北 성명에 담긴 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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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5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대북 성명은 미국의 침공을 우려하는 북한 지도부에 안도감을 주는 메시지다. 또 핵 개발 시인 이후 북·미 불가침 협정 체결을 주장해 온 북측에 대한 미국의 공식 답변이다. 이제 미국이 북한을 선제 공격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힌 만큼 국제사회가 한결같이 촉구해 온 고농축 우라늄 핵 개발 계획을 폐기하라는 다른 형태의 압박이기도 하다.

다만 "미국은 북한과 다른 미래를 갖기 희망한다"는 새로운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북한이 미측 요구에 긍정적으로 답할 경우 보상이 따를 여지가 있음을 시사했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집행이사회의 대북 중유 지원 중단 결정 하루 만에 나온 백악관의 성명은 부시 정부의 대북 접근 방식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대북관계의 어젠다와 협상 방식 및 절차 등을 미국 주도로 끌고 가겠다는 것이다. 이번 성명은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이 구체화한 마당에 북측의 극단적 대응을 사전에 억지하기 위한 행보다. 북한이 KEDO의 결정과 중유 공급 중단을 북·미 기본 합의 파기로 받아들여 이에 상응하는 극단 조치를 취할 경우 이라크에 더해 또 다른 골칫거리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북 성명에도 언급됐듯이 사태의 평화적 해결, 북한의 핵 개발 우선 폐기, 국제사회의 부단한 외교적 압력 등 미국의 기존 입장과 달라진 것은 없다. 그래서 이번 성명이 대이라크 전쟁을 앞둔 '미국의 시간벌기'란 해석도 가능하다. 하지만 "북한 주민과의 우호를 추구한다"는 구절을 삽입해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집착하는 북한 지도부와 북한 인민을 분리해 상대하겠다는 미국식 외교 전통을 재확인한 대목은 북측의 각별한 관심을 요구한다. 미국의 메시지는 북한이 비켜갈 수 없는 마지노선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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