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홍명보 남는 신태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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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33·포항)는 떠나고 신태용(32·성남)은 남는다.

성남의 우승이 확정된 직후 포항 축구전용구장에서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의 고별 행사가 열렸다. 성남의 주장 신태용이 홍명보에게 꽃다발을 건넨 뒤 다정하게 얼싸안았다. 신태용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지만 홍명보의 굳은 표정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멋진 피날레는커녕 네 골이나 허용한 뒤 후반 교체된 '고별경기 주인공'의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관중의 연호 속에 홍명보가 경기장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신태용은 아들 재원(5)을 안고 인터뷰에 응하고 있었다. 그는 "경기를 앞두고 후배들에게 '오늘 지면 1년을 후회하게 된다. 1년 동안 고생한 게 아깝지도 않으냐'고 다그쳤다"고 말했다.

둘은 1992년 나란히 K-리그에 데뷔, 그해 홍명보는 MVP, 신태용은 신인왕에 올랐다. 이후 홍명보는 4회 연속 월드컵에 출전하는 등 화려한 경력을 쌓았고 J-리그에서도 부와 명성을 얻었다. 반면 11년째 고집스럽게 팀을 지킨 신태용은 국내 선수로는 최초로 유니폼에 다섯 개의 별(정규리그 우승 상징)을 달게 됐다. 이날 도움 하나를 추가한 신태용은 자신이 갖고 있는 K-리그 최다 도움 기록을 57개로 늘렸다. 홍명보는 축구 행정가의 꿈을 안고 미국 프로축구(MSL)로 다시 떠난다. 신태용은 은퇴할 때까지 성남 유니폼을 벗지 않겠다고 말한다.

두 거목은 서로의 앞날에 행운이 함께 하기를 기원하며 악수를 나눈 뒤 헤어졌다.

포항=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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