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퇴양난의 흑, 다음 한수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7면

제2보

(28~50)=흑 쪽으로 먼저 걸친 것은 '투자가 많은 쪽에 주력한다'는 기본원리에 충실한 수다. 큰 실리를 내주고 구축한 아래쪽 세력, 이 흑세력을 가지고 뭔가를 만들어내야 하는 게 흑의 명제다. 백28로 받았을 때 曺9단의 29,31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가볍고 함축적인 행마. 마치 젊은 날 曺9단의 별명이었던 '제비'를 연상케 한다.

집을 짓는다면 '참고도' 흑1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백2의 뒷문이 열려 있어 생각보다 잘 되지 않는다. 29,31은 曺9단의 뛰어난 감각을 보여주는 한 수로 최대한 모양을 넓힌 다음 뛰어든 상대를 공략해 판을 이끌어보려는 의도다. 羅9단은 즉각 32,34로 뛰어들었는데 이 다음 귀로 파고든 흑35에서도 조훈현이란 사람의 체취가 물씬 묻어난다. 세력 속으로 들어왔으니 자존심으로 따진다면 당연히 공격에 나서야 옳겠지만 이 백은 A 부근이 언제나 선수여서 뜻대로 되지 않는다.

35는 현실적이다. 그리고 유연하다. 밑을 도려낸 다음 외곽의 백을 공격할 수 있으면 더욱 좋고 공격이 안되더라도 실리를 차지하고 있어 언제나 변신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 曺9단은 일직선보다는 이런 식의 곡선을 즐기고 그 곡선 속에 담긴 변화의 여지를 높이 산다.

48,50.실리를 빼앗긴 羅9단이 역습에 나서고 있다. 흑은 자못 위태롭다.B도 급하고 중앙의 한점은 요석이라 죽일 수 없다.흑의 다음 한수는 과연 어디일까.

박치문 전문기자

daroo@joongang.co.kr

협찬:삼성카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