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 어떻게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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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미국 경제는 지난 3분기 중 3.1%의 성장을 이룩했다는 미국 정부 발표가 며칠 전에 있었다. 그런데 불과 5∼6년 전까지만 해도 인플레 위험 없이 미국 경제가 이룩할 수 있다고 믿어온 성장률을 상회하는 성장세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사람들은 이 발표에 만족하지 못하고 오히려 소위 더블 딥(double dip), 즉 다시 경기후퇴(recession)를 맞는 것을 우려할까.

더블 딥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최근 미국 경제의 성장 내용에 주목한다. 최근 들어 미국 경제는 1990년대 말까지 지속된 소위 정보기술(IT) 관련 투자 과잉으로 기업 투자가 부진한 가운데 주로 민간소비에 의해 성장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 민간소비가 주식시장의 침체와 실업의 증가, 테러와의 전쟁과 대 이라크 전의 임박 예상, 그리고 대형 기업 회계부정 사건 등으로 주춤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의 설비투자가 최근 들어 서서히 회복되고 있고, 반도체와 컴퓨터 등 IT 산업의 일부 경기도 호전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민간소비가 계속해 위축된다면 이러한 기업 투자 회복 추세 또한 그 힘을 잃게 돼 더블 딥까지 갈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또한 좀더 긴 안목에서 미국 경제의 앞날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거의 5%에 육박하는 미국 경상수지 적자에도 주목한다. 만약 '사실상의 세계적 달러 본위제도'아래에서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였다면 그 나라의 통화가치는 급락하고, 대외신뢰도는 크게 추락해 환란을 걱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에는 이러한 상황 아래에서도 외국 투자자들이 달러 자산을 갖기를 원해 아직은 문제가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추세는 무한정 계속될 수 없으며 조만간 달러의 약세와 주요 통화 간의 환율 조정은 불가피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말해 이 문제에 관한 세계 전문가들의 중론은 미국 경제의 생산성 증가를 감안한 달러 가치 고평가 폭은 그렇게 크지 않아 달러 가치 조정은 경제에 큰 충격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서서히 이룩될 수 있다고 보고 있어 퍽 다행스런 것이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우리의 주관심사는 과연 미국 경제는 더블 딥을 면하고 일시 주춤하다 경기회복세로 돌아설 수 있을지 다. 물론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미국 경제의 지속적인 생산성 향상에 따른 기업이윤 증가 추세만 보더라도 더블 딥은 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또 다시 장기호황까지도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더블 딥 여부는 역시 미국 소비자들의 경제에 대한 신뢰 회복에 달려 있다.

그동안 더블 딥의 우려가 없다는 낙관적 자세를 견지해 오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마저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한꺼번에 단기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한 것은 당장 민간소비와 기업투자를 크게 촉진하겠다는 것보다 오히려 소비자들의 소비심리 위축을 어느 정도 불식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취한 조치로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 부시 행정부의 경제정책 책임자들은 이번의 금리 인하와 함께 가계 실질 소득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될 세금 삭감 등 적극적인 재정정책으로 소비 위축을 막겠다고 나설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정부의 노력은 이번 공화당의 승리를 일궈낸 중간선거 결과로 훨씬 쉬워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 주식시장의 침체와 IT 관련 과잉투자 여파가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유엔 결의안 채택 이후 남은 절차 등을 감안할 때 대 이라크 전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가까운 시일 안에 소비심리의 가파른 회복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내년 상반기까지 미국 경제는 경기 후퇴를 맞지 않더라도 성장잠재율(3.5∼4%)을 밑도는 비교적 낮은 성장세를 보인 이후 적극적인 재정금융 정책을 배경으로 또 다른 큰 이변이 없는 한 내년 하반기부터 경기 회복세가 가속화할 것으로 봐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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