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에 통신선 다닥다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서울 서초구 서초동 아파트와 상업지역 이면도로의 전봇대는 비스듬하게 기울어 있다. 상당수 전봇대는 복잡하게 얽힌 굵은 케이블선의 무게를 못이겨 중간중간 균열이 생겨 위태로워 보일 정도다.

초고속 인터넷선과 지역케이블방송 등 정보 통신망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전봇대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인터넷 전용선과 케이블 방송선이 늘어나는 데다 기업·금융기관의 전산망과 경찰·군부대·관공서의 행정업무용 통신선까지 더해져 전봇대 한 개에 많게는 30개 선이 설치된 곳이 적지 않다.

한국전력의 '배전설비 지침'에 따르면 전봇대 한 개당 전력공급선 이외에 추가로 설치할 수 있는 통신선은 모두 12개며 무게에 따라 최고 18개까지 설치가 가능하다.

그러나 한전의 승인을 받지 않은 통신사업자들이 무단으로 설치해 전봇대가 지탱할 수 있는 무게(5백㎏)에 다다른 곳도 적지 않다.

◇마구잡이 설치=초고속인터넷 가입자가 1천만명을 넘어 세계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정보통신 인프라가 늘어남에 따라 통신선의 전봇대 의존도가 높아졌다. 일부 통신선은 땅속에 설치되고 있으나 대부분의 통신선은 전봇대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부 업자들은 허가도 받지 않고 설치하고 있는 형편이다.

한전에 따르면 1999년 정보화촉진법 개정으로 통신사업자가 본격적으로 전주(電柱)를 임대해 사용할 수 있게 된데다 때마침 불어닥친 정부의 정보화 인프라 구축 정책에 맞물려 통신업자들의 불법 행위가 묵인돼 왔다는 것이다.

◇솜방망이 단속=한전은 2000년 전국의 광케이블망 실태조사를 벌여 불법 가설된 통신망에 대해 철거명령을 내렸을 뿐 민원을 우려해 강제 철거하지 못했다. 인터넷 업체 관계자는 "지중화 작업은 전봇대에 선로를 설치하는 것보다 20∼30배 비용이 들기 때문에 업자들이 꺼린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도로를 완전히 파헤쳐 매설하는 방법 대신 땅에 3∼4㎝의 얕은 홈을 파 광케이블을 묻는 무굴착 포설공법(MCS)이 소개됐지만 기존 도로관련법은 도로 일부분을 절개하는 공사를 허용하지 않아 시행을 못하고 있다.

서울시도 전봇대의 사용·관리는 전적으로 한전과 한통의 책임이기 때문에 단속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 co. 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