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사진가 강운구씨 작품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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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 연기처럼 무상한 세월이 느껴지는 손(上)과 한평생에 걸친 노동이 깊게 배어 든 농부의 얼굴을 담은 '용대리, 북면, 인제군, 강원도, 1977'연작.

송알송알 맺힌 땀방울이 얼굴을 덮었다. 주름 투성이 뭉툭한 손가락 끝에서 꽁초가 타들어간다. 한평생에 걸친 노동이 진하게 배어든 이 농부 사진에 작가 강운구(64)씨는 한마디를 적어넣었다. '내가 본 그 사람 그대로, 보이는 느낌 그대로.'우리 사진계가 손꼽는 다큐멘터리 사진가 강씨가 열화당 사진문고로 펴낸 '강운구'는 일생 이처럼 '그대로'를 좆아온 한 작가의 기록이자 자기 존재 증명이다.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40여 년에 걸친 그의 작품 목록에서 70여 점을 가려 뽑은 사진집은 손바닥만한 문고판이지만 작가 자신이 붙인 작품 설명과 이력으로 든든하다. 강씨는 "자기 작품에 꼬리를 달기는 쉽지가 않다"고 썼으나 건조하면서도 강건한 글맛은 차지다.

동생을 업은 한 소년의 사진 해석은 사회학적인 분석과 맞먹는다. "특별한 관심을 둔 적이 없었는데도 아이를 업은 사진이 많이 찍힌 것은, 그런 것이 그 당시의 보편적인 삶이었기 때문이다." 개인전 '마을 삼부작'으로 널리 알려진 전북 장수군 수분리의 풍경에는 살짝 물기가 어려있다. "요즈음 수분리에 가 보니 알아볼 수 없게 바뀌어 있었다. 내가 그렇게 되었듯이." 70년대 새마을 운동과 개발독재로 망가진 우리 땅에 대한 작가의 애정은 그에게 '가장 한국적인 질감의 사진을 남기는 사진가''사진의 기록성에 바탕을 둔 서정적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사진가'등의 수식어를 붙이게 했다.

강운구씨는 일간지 사진기자로 출발해 10여 년 만에 전업작가로 돌아선 까닭도 털어놓았다. "이 사건 저 사건을 '뛰다'가 문득문득 사건사진에는 '내'가 없다는 것을 허전해 했다."

사진집에 해설을 쓴 문광훈씨는 "생활의 거친 그루터기, 시커멓게 타다 남은 현실의 앙금을 기록한 강운구의 사진을 보면서 우리는 그의 고집과 자부심 그리고 괴로움과 고통까지도 귀하게 여기게 된다. 이것이 우리 문화의 다가올 풍요를 준비하는 한 동력이 될 것"이라고 평했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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