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청비용·對北정보비·원장 판공비 등 국정원 예산 100억 삭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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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회 정보위는 6일 전체회의를 열고 내년도 국정원 예산안 중 1백억원을 삭감했다.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80억원을 삭감한 데 이어 두번째다.

최근 도청 논란과 관련해 감청장비 구입 및 운영비(20억원)와 과학기술정보비(24억원)를 깎았고, 올해 사업비 증액분 전액(33억원)과 대북정보비 일부(20억원)도 삭감했다.

국정원장의 판공비격인 지휘활동비도 3억원 줄였다. 이는 검찰 수사과정에서 신건(辛建)원장이 대통령 차남 김홍업(金弘業)씨에게 준 용돈 1천만원의 출처란 의혹이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앞서 한나라당은 "3백억원 삭감하겠다"고 밀어붙였다. 정형근(鄭亨根)·홍준표(洪準杓)의원은 "국정원이 감청장비를 가지고 불법 도청을 하고 있는 만큼 감청 관련 예산을 대폭 깎아야 한다"고 말했다. 洪의원은 "전·현직 국정원장이 대통령 아들에게 용돈을 준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판공비를 전액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기춘(金淇春)의원은 "정부 주장대로 지금이 '화해·협력시대'라면 대북 정보 예산은 깎는 게 옳다"고 지적했다.

반면 신건 원장은 "새해 예산이 긴축예산으로 편성된 만큼 정부 원안대로 통과시켜달라"고 요청했다. 민주당 의원들도 辛원장의 말에 동조했었다.

도중 감정싸움도 있었다. 鄭의원은 회의장 앞 복도에서 "60명 뽑던 직원을 2백명씩 뽑는 등 국정원이 예산을 방만하게 운영하고 있다" "국정원 3차장 밑에 북한을 위해 일하는 19명의 특수조직이 있고 국정원도 존재 자체는 인정했다. 돈이 넘쳐나니 이런 일만 벌이고 있다"는 등의 성토를 했다.

또 "박지원(朴智元)청와대 비서실장이 정상회담 협상을 위해 2000년 3월 9일 싱가포르, 3월 17일 베이징(北京), 4월 8일 상하이(上海)에 갔을 때 3차장이 보좌관 자격으로 함께 갔다"면서 "3차장도 이를 시인했다"고 주장했다. 또 "도청했다고 조목조목 따지니까 辛원장이 '나중에 보고하겠다'고 해 사실상 도청 사실을 시인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국정원 유인희(劉仁熙)공보관은 "엉터리 같은 얘기"라며 맞섰다. 그리곤 "다 지어낸 말이며 소설 같은 얘기" "鄭의원의 말은 99%가 사실과 다르다"고 반격했다.

이를 전해들은 鄭의원은 辛원장에게 "(공보관을)사표받거나 파면하는 등 즉각 조치하라"고 노발대발했다.

한편 신건 원장은 국정원에 대한 국정조사 요구에 대해 "세계적으로 사례가 없다"고 해오던 말을 바꿔 "독일 헌법수호청(DFV)이 플루토늄 밀수건으로 1995년부터 2년11개월간 국정조사를 받았으나 진상을 밝히지 못하고, 정보 마비가 되는 등 후유증이 컸다"고 했다.

서승욱 기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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