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서둘 일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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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0월 30일부터 2일까지 평양에서 열렸던 당국간 개성공단 제1차 실무회의에서는 이 달 안에 북한이 '개성공업지구법'을 제정하고 12월 중에 착공식을 가진 뒤 내년 말까지 제1단계 사업을 완료하기로 합의했다. 사업이 계획대로 추진된다면 내년 3월에는 현대아산과 토지공사가 공단 용지를 분양하고, 전력과 공업용수 사용량이 크지 않은 기업이 우선 입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신의주 특별행정구 건설 방침에 이어 개성공단 사업에 북한이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다는 점은 일단 긍정적이다. 그러나 개성공단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해결돼야 할 사안이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개성공단 사업에 대한 북측의 인식이다. 북한이 과연 개성공단 사업을 북한경제 회생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자발적 의지로 추진해야 하는 사업으로 보고 있는지 의문이다. 행여 남측의 요구를 들어준다는 식의 접근을 통해 사업의 성공보다는 추진과정에서 남측이 제공할 반대급부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사업의 장래는 불투명하다.

사업 초기에 공단 조성을 위한 모든 경제적 부담을 남한이 부담한다는 것도 마음에 걸리는 대목이다. 북측의 부담이 단순히 토지 제공에 머무른다면 향후 사업이 불가피하게 중단될 경우, 실질적 경제부담은 고스란히 남측이 떠안게 된다.

중국이 경제특구 건설 초기에 막대한 인프라 투자를 통해 외국투자자의 신뢰를 살 수 있었던 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신의주와 개성 모두 북한은 토지사용권만 개방하고 나머지는 투자자가 알아서 할 것이라는 식의 접근은 위험한 발상이다. 특히 최근 불거진 현대의 대북지원과 관련된 의혹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기업인 토지공사가 재원조달을 책임질 경우, 또다른 지원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다.

'개성공업지구법'은 남측 사업자에게 공단 관리권을 줄 것이라고는 하나 신의주 특별행정구와 달리 북한의 중앙과 지대당국이 별도로 관할권을 행사할 경우, 개성공단의 '특구 자율권'은 침해될 수밖에 없다. 남측 사업자가 경영권을 가진다고 하면서도 임금수준에 대해 구체적 합의를 요구하는 북측의 자세로 미뤄 볼 때, 공단 가동 이후 안정적인 노무관리가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비무장지대에 인접한 개성공단의 입지로 인해 예기치 못한 북한 군부의 영향력 행사는 사업에 곤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 따라서 '개성공업지구법'은 이와 같은 우려를 사전에 해소할 수 있는 보장조치가 포함돼야 한다.

그밖에 남북한간에 해결해야 할 경의선 철도 및 도로 연결과 이에 따른 통행·통관·검역 및 통신 등에 관한 협정 역시 치밀하게 처리해야 할 문제다. 우리측은 육로수송 및 통행을 위한 국경관리 협정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조급하게 처리할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특히 관련 협정은 남북한 경제교류가 민족내부거래라는 점을 국제사회에서 공인 받을 수 있도록 조율돼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상품의 원산지 문제로 인해 해외시장에 대한 수출이 어려워 질 수 있다. 어차피 내년 봄이라야 공사가 가능하다면 12월로 예정된 착공식을 다소 늦추더라도 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준비작업이 급선무다.

개성공단은 북한의 개혁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시금석이다. 북한이 개성공단 사업에서 마저 외부 투자자의 호의적 반응을 얻지 못한다면 북한경제의 앞날은 어둡다. 단편적인 경제조치나 세율(稅率)상의 우대조건 만으로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을 수는 없다. 이번 주에 열릴 한·미·일간 대북정책조정그룹(TCOG) 도쿄(東京)회의가 대북 압박문제를 논의하는 상황에서 시공자와 한전간의 상업계약만으로 공단 전력공급이 이뤄질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개성공단의 성공을 위해서는 북한이 자발적으로 핵문제를 해결하고 경제개혁과 개방에 대한 명백한 노선과 실천의지를 천명하는 결단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개성공단은 서둘러서 될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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