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주도 성장 유혹 떨쳤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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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정부는 지난해 말 발표한 경제운용보고서에서 올해 경제운용의 목표를 구조조정과 체질강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에 두었다. 거시경제 운용과 관련해서는 성장률을 4%이상, 물가상승률을 3% 안팎에서 유지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였다.

지난 한햇동안 정부는 구조조정과 경기회복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4대 부문 구조개혁의 완수를 위해 불철주야 뛰었고 거시경제적으로는 물가상승률을 3% 수준에서 유지하는 가운데 경제성장률을 6%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제 불안에 대한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경기는 회복되어 성장률이 작년 3%에서 올해 6%로 크게 높아졌지만 경기회복의 부작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올해 경제성장은 수출과 설비투자보다는 소비와 건설투자 확대에 의존했기 때문에 성장률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경쟁력이나 성장잠재력은 강화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내수를 촉진하기 위한 저금리와 가계대출 정책으로 부동산가격이 급등하고 가계부실 및 신용불량자가 양산되었다. 여전히 제거되지 않은 경제적 취약성으로 주가는 한때 1000고지 돌파를 노리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지난해 말 수준으로 되밀렸다.

이렇게 연말에 와서 경제불안에 대한 우려가 증폭된 것은 미국 경기의 회복 부진과 이라크 전쟁 가능성 등으로 대외여건이 악화된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지나치게 내수주도 성장에 의존하면서 정책조정에 실기하였기 때문이다.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며 무엇을 실기하였나 되짚어보자.

올해 1분기 중 우리 경제가 수출 부진에도 불구하고 내수가 급증하자 이를 '한국의 저력'으로 치부하고 '내수예찬론'을 펼치기도 하였다.

가계대출이 크게 늘면서 이 자금이 부동산시장으로 흘러 들어가고 마구잡이 신용카드 발급으로 능력 이상의 소비를 하는 신용불량자가 늘어났는데도 신속한 경기회복에만 도취해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2분기 들어서는 공신력있는 예측기관 중에서 한국은행이 처음으로 올해 경제성장률을 4%에서 6%로 과감히 상향조정하며 금리 인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와 기업들은 향후 경제 여건이 불투명하다며 선제적 금리 인상에 반대했다.

돌이켜 보면 하반기로 가면서 성장세가 확대되고 물가 불안이 심화될 수 있다는 한국은행의 경기진단은 옳은 것이었다. 물론 한국은행의 경기진단도 틀릴 수 있다. 그러나 상반기 중 주택매매가격과 전세금의 오름세가 크게 확대되고 시장금리가 상승하는 데도 콜금리를 겨우 0.25%포인트 올림으로써 부동산시장 불안과 가계부실에 미리 선제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하반기 들어서는 엔론사태 등 미국의 회계부정사건으로 미국 주식시장이 급랭하고 미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는 등 대외여건이 악화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증시 차별화론'이 등장하면서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의 호조에 기반을 둔 내수확대가 지속되었다.

4분기 들어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정부는 뒤늦게 부동산시장의 안정과 가계대출 및 신용억제에 나서고 있다. 각종 안정정책의 영향으로 부동산가격과 소비는 정점을 지난 듯하고 지난 9월에는 산업생산 증가세가 크게 둔화됨으로써 내수예찬론이 힘을 잃고 있다.

주가도 미국 주가에 따라 움직이는 동조화 현상이 또 나타나면서 차별화의 모습을 보기 어렵다.

이렇게 경제가 조정되면서 진정한 한국의 저력은 구조조정과 성장잠재력 확충에 있음을 다시 깨닫게 된다.

지금과 같이 세계경제 여건이 불확실할 때에는 내년 이후 경기도 낙관하기 어렵다. 세계경제에는 여전히 디플레이션(경기가 침체하는 가운데 물가도 하락하는 현상)과 미 달러화 약세의 위험이 드리워져 있고, 국내 경제에는 내수둔화와 자산시장 급랭 및 가계부실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공적자금 상환에 따른 성장저하 효과도 0.5∼1%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부는 내년 성장률이 4% 수준으로 낮아지더라도 재정과 통화정책을 사용하여 성장률을 올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공적자금을 상환하고 4대 사회보험의 부실을 덜어내기 위한 재정건전화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하므로 재정을 통해 경기둔화에 대처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내년에도 선제적 금리정책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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