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품 기증자가 일일점원 봉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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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장관님, 이 오디오 1만원만 깎아주세요. "

"원래는 안 되는데…좋아요. 7만원에 가져가세요. "

지난달 17일 서울 안국동에 문을 연 '아름다운 가게'(공동대표 박성준·손숙)에 지난 2일 특별한 코너가 마련됐다. 자신이 기증한 물건을 매장 안에 따로 마련된 부스에 직접 전시하고 판매까지 하는 '아름다운 토요일' 행사에 김명자(金明子)환경부장관이 첫번째 일일 점원으로 나선 것이다.

金장관이 이날 기증한 물품은 책과 오디오세트·가습기·그릇 등. 오전 11시부터 판매에 나선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물건들은 대부분 팔려나갔다. 특히 1996년 세미나차 남미를 방문했을 당시 사온 특산품 액세서리들이 큰 인기를 끌었다.

이날 오후에는 4억원 상당의 책을 기증한 도서출판 김영사 직원들이 일일 점원으로 봉사했다. 희귀 원서들과 조정래씨의 친필 사인이 담긴 '태백산맥' 전권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아름다운 재단 상임이사 박원순(朴元淳)변호사는 "사회단체가 기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게 운영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재활용 문화를 더욱 활성화하려는 것"이라고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

아름다운 가게는 문을 연 지 20일이 채 안됐지만 반응은 폭발적이다. 일찍 와야 좋은 물건을 살 수 있다는 생각에 개점 시간인 오전 10시30분이 되기도 전 가게 앞에는 30m 정도 줄이 길게 늘어서기 일쑤다.

좋은 물건을 제때 공급하기 위해 자원봉사자들의 손길도 부쩍 바빠졌다. 가게 김연희(27)간사는 "넘쳐나는 기증 물품을 손질하고 말아서 포장하는 '김밥말이'를 하느라 요즘 오전 2시를 넘겨 퇴근한다"며 "손님들의 반응이 너무 좋아 모두 힘든지 모르고 일한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가게의 수익금은 장애인·극빈자·실직자 등 불우이웃을 돕는데 모두 사용된다. 이 때문에 연말연시를 맞아 아름다운 토요일 행사에 참여하려는 기업·단체들의 문의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오는 9일에는 외식업체인 동전산업 직원, 16일에는 김&장 법률사무소 간부, 23일엔 국민은행 영등포지점 직원들이 아름다운 토요일 행사에 참여한다.

행사를 마친 金장관은 "환경운동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덜 쓰고, 다시 쓰고, 재활용하는 것을 일상생활에서 습관화하는 것"이라며 가게의 자원봉사자들을 격려했다.

김필규 기자

phil9@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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