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불법사찰, 몸통 없는 원맨쇼로 끝낼 작정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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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불법 민간인 사찰 의혹’ 수사가 부실(不實) 논란에 빠져들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별수사팀을 꾸려 한 달 넘게 수사를 하고도 지금까지 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간부 2명을 구속한 게 고작이다. 불법 사찰은 확인했지만 지원관실이 월권(越權)과 전횡(專橫)을 일삼았던 배경과 실체는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영포(영일·포항) 라인’이란 비선(秘線) 조직은 존재하는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게 한 배후는 누구인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검찰은 지난 주말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을 소환 조사했다. 구속된 이인규 전 지원관에게서 사적으로 보고를 받았는지 캐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증거나 진술 확보에 실패했다. 일각에서 ‘윗선’으로 지목하는 박영준 국무차장의 연루 여부는 아예 접근조차 못 하는 상황이 됐다. 수사가 이대로 흐지부지된다면 ‘사찰 사건’은 이인규 전 지원관이 과잉 충성심에서 벌인 ‘원맨쇼’로 종결될 수 있다. 몸통은 오간 데 없고 깃털만 뽑아내는 전형적인 꼬리자르기식 수사라는 비판을 면키 어려운 것이다.

석연치 않은 구석은 또 있다. 누군가 불법 사찰과 관련된 지원관실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부수고 증거 인멸을 시도하는 바람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한다. 중요한 수사자료이자 공공기관의 기록물을 훼손한 지원관실 내부의 범인을 잡지 못할 정도로 우리 검찰의 수사력이 그렇게 허술한가.

검찰은 11일께 이인규 전 지원관 등을 기소한 뒤 ‘비선 보고 의혹’ 수사를 계속한다는 방침이라지만 사실상 마무리 수순에 들어갔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증거도 없고, 본인들이 부인하는데 없는 걸 있다고 할 순 없지 않으냐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이 핵심 의혹을 규명하지 못한 채 용두사미(龍頭蛇尾)로 수사를 끝낸다면 망신은 물론 특검을 자초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