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大選 결선 투표… 좌파 룰라 승리 확실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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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누가 대통령에 당선될 것 같냐고요?"

브라질 대통령 결선투표가 실시된 27일 상파울루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그게 질문이 되느냐는 반응이었다. 노동자당의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약칭 룰라)후보가 당선될 것은 불문가지라는 얘기였다.

지난 6일 1차 투표에서 룰라 후보는 46.4%의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과반수에는 못 미쳐 당선을 확정짓지 못했다. 이에 따라 1차 투표에서 1·2위를 차지한 룰라 후보와 여당인 사회민주당의 주제 세하 후보가 자웅을 겨루는 2차 투표가 이날 실시된 것이다.

여론조사는 66대 34로 룰라의 압승을 점치고 있다. 그런 분위기는 거리에서도 읽을 수 있었다. 남미 최대의 상공업 도시인 이곳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5월 23일 도로' 중앙분리대엔 룰라 후보의 포스터만 펄럭일 뿐 세하 후보 얼굴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미 포기했다는 뜻일까.

택시기사에게 물어봤더니 "여당 후보가 2차 투표에 진출한 것만도 다행스런 일"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현 정권이 지난 8년간 인플레는 잡았는지 모르지만 빈부격차와 부정부패, 치안부재가 문제라고 그는 불평을 쏟아냈다.

투표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당락은 이미 결정됐다는 분위기다. 현지 신문엔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 회장이 룰라 후보를 미국으로 초청하고 싶어 한다는 기사가 크게 실려 있었다. 게이츠 회장이 룰라를 이미 대통령 당선자로 인정한다는 얘기였다.

회사원 조앙 호드리게스(27)는 "유일한 관심사는 룰라가 몇 %의 득표율로 당선되느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룰라 후보를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기득권층도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이들은 현실을 받아들이며 "룰라가 브라질의 국익을 해치지는 않을 것"이라며 애써 자위하는 모습이었다. 룰라의 집권에 대한 가진 자들의 불안이 상존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남미 최대국 브라질에 첫 좌파정권이 등장한다 해도 경천동지할 일들이 벌어지리라고 점치는 이는 별로 없었다.

봉제공장을 경영한다는 40대의 한 중소기업인은 은행의 대출이자가 예금이자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문제를 룰라가 개선하겠다고 공약했기 때문에 룰라를 지지한다면서 "룰라는 더 이상 좌파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과거에는 분명 좌파였지만 현실정치에 20년 이상 몸 담으면서 중도 좌파로 변신했다는 것이다.

유세 기간 중 룰라는 부유층의 상징 가운데 하나인 조르지오 아르마니 양복을 자주 입고 나타났다. 미국의 뉴욕 타임스는 이를 '뉴(new) 룰라'는 '올드(old) 룰라'와 다르다는 식으로 표현했다. 룰라 자신도 얼마 전 "지난 25년간 브라질은 변했다. 그동안 내가 만든 노동자당도 변했고, 나도 변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고백을 집권을 위한 수사(修辭)로 깎아내리는 이들도 있지만 적어도 그가 대통령이 된 뒤에도 과거 노동운동을 할 때의 생각으로 나라를 이끌 수 없음은 누구보다 그 자신이 잘 알고 있을 거라는 공감대는 형성돼 있었다. 상파울루 거리에서 만난 많은 사람은 변화에 목말라하고 있었다. 간호사라고 밝힌 클라우디아 벨레치(32)는 무엇이 어떻게 달라질 걸로 기대하느냐는 질문에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면서도 "변화라는 단어 자체에 끌린다"고 대답했다. 오늘과 다른 내일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그만큼 널리 퍼져 있었다.

sims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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