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요구에 밀려 조기개발 선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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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명박 서울시장이 21일 마곡지구 조기개발 카드를 갑자기 꺼내들었다. 李시장은 시기를 구체적으로 못박지 않았지만 이르면 2005년부터 부분적인 개발에 착수해 단계적으로 추진할 방침을 시사했다. 李시장은 "서울시내 녹지는 최대한 보전하고 마곡지구는 다음 세대가 개발할 수 있도록 남겨두겠다"는 자신의 발언을 정면으로 뒤집은 셈이다. 전격적인 방향 선회로 서울시 실무자들도 어리둥절할 정도다.

◇정말 개발되나=김포공항 주변의 마곡지구(1백19만평)는 지난 10년 동안 개발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워낙 규모가 큰데다 도시기본계획에 따라 2011년까지 개발 유보지로 묶여있었기 때문이다. 조순·고건 전시장은 물론 李시장도 최근까지 "마곡지구 개발은 지하철 9호선과 신공항 고속철도·경인운하 건설 등과 연계해 종합개발계획 수립 뒤 점진적으로 시행하겠다"며 신중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강서구청과 주민들의 조기개발 요구는 드셌다. 특히 시가 최근 인접한 발산지구에 임대아파트 4천가구를 포함해 7천9백가구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짓겠다고 밝힌 것이 불에 기름을 부었다.

서울시내 임대아파트의 30%가 노원구와 강서구에 집중되면서 주민들의 분노와 소외감이 거칠게 터져나온 것이다. 최근에는 유영(柳瑛)강서구청장이 "시장선거 당시 이명박 후보가 마곡지구를 조기 개발하겠다는 합의서에 도장을 찍었다"고 밝혀 논란이 가열됐다.

◇어떻게 개발되나=서울시 박필용(朴必容)도시계획과장은 "마곡지구를 시가지 조성구역으로 지정, 주거·상업지역 등 복합기능을 갖는 신시가지를 건설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서구청은 우선 혐오시설인 서남하수처리장 주변에 20만∼30만평 규모의 식물원을 조성하고 아파트단지와 호텔·백화점·종합행정타운은 물론 생명공학·정보통신 등 첨단산업 단지도 끌어들이겠다는 방침이다. 柳구청장은 "인천·김포공항의 배후 도시 역할을 하면서 마곡지구는 3개 지하철 노선과 뛰어난 도로교통망을 배경으로 서울 서남부의 거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지역은 논밭이 대부분이고 교통기반시설이 곧 완비될 예정이어서 개발속도는 예상보다 빠를 것으로 보인다. 시는 상암지구 개발처럼 공영개발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따라 2조6천6백억원으로 추정되는 사업비 대부분은 토지보상비(평당 1백만원선)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시는 2004∼2005년부터 매수청구를 원하는 사람들의 땅부터 매입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개발은 2007년 지하철 9호선 완공 후 역세권 개발부터 시작될 전망이다.

◇문제는 없나=시가 마곡지구 개발을 서두는 것은 주민들의 요구에 밀려 기존 방침에서 한발 후퇴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1997년 도시기본계획 수립 당시에는 발산지구의 임대주택단지를 고려하지 않았다"며 "지하철 9호선 개통과 발산지구 등 새 변수가 생겨 조기개발로 선회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시청 내부에서도 "부동산시장이 안정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대형 택지개발을 갑자기 들고나온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게다가 1백만평이 넘는 마곡지구까지 개발될 경우 서울시내에는 더이상 미개발지가 없게 된다. 특히 마곡지구는 통일시대에 대비한 개발 요충지로 꼽혀왔다. 건설업계 관계자도 "서울의 부동산값이 폭등하거나 통일 이후 서울 인구가 급증할 경우에 대비, 마지막 카드인 마곡지구는 최대한 미개발지로 남겨둘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현영·김필규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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