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교동계의 한심한 처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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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현 정권 핵심인 민주당 내 동교동계까지 후보 단일화를 외치는 모습은 우리를 비감하게 만든다. 말이 후보 단일화지 자신들의 손으로 선출한 노무현 후보더러 자리를 내놓으라는 요구다. 이유라곤 당선 가능성이 작다는 게 전부인데 이는 정치 도의상 취할 바가 아니다. 어차피 정치 철새의 계절이라지만 역사적인 국민 경선을 뽐내던 이들이 지지율에 목을 맨 채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오랜 세월 맨 몸으로 야당을 이끌어온 당 정체성의 상징으로서 동교동계 인사들의 처신과 선택은 보다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아직 구체적 행동 단계에 돌입한 게 아니라지만 지지율을 내세워 당 후보를 압박하는 행태는 며칠 전 정몽준 의원 쪽으로 달려간 김민석 전 의원의 전형적 철새 작태 이상의 비난을 받을 만하다.

김영배 전 대표의 "국민경선은 사기극" 발언에다 현 정권에서 요직을 지냈던 이들의 집단 탈당 행렬로 인해 여권이 극구 부인해온 DJ와 鄭의원(MJ) 간의 공조, 이른바 'DMJ 연대'에 대한 의구심이 고조되는 지금이다. 서울시장 후보였던 김민석씨 정도의 이탈로 의혹이 쏠리는 마당에 DJ 전위세력으로서 동교동계의 기회주의적 태도는 DMJ 연대를 기정사실화할 수도 있다. 그 실현 여부가 어떻든 여권의 선거전략 상으로도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현실정치에서 손을 뗐다는 DJ의 비밀 지원을 받는다는 인식이 퍼진다면 어떤 결과를 부를지는 불문가지의 일이다.

동교동계의 무정견·무원칙은 나아가 불과 2년9개월 전의 창당이 국민 기만이 아니었나 하는 의문마저 생기게 할 수 있다. 후보 단일화는 곧 합당을 의미하는데 노선·이념은 논외로 하니 무슨 비난을 들어도 변명의 여지가 없을 터다.국민 개혁정당을 표방했지만 권력형 비리로 점철됐고, 대선을 앞둔 지금은 수치심마저 잊고 마냥 허둥대고 있지 않은가. 이제라도 자신들이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지를 한번쯤 숙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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