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로 뒷거래와 더티게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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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언제부턴가 우리는 비리 폭로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폭로 내용 어느 하나 규명 안된 채 의혹과 혼란만 더해가는 것도 폭로세태의 한 특징이다.

엊그제 이 딱한 세태에 '장학로 비리 폭로가 국민회의(민주당 전신)측 매수 결과'라는 주장이 추가돼 국민은 또한번 절망하고 있다. 공작정치의 피해자였던 야당마저 답습했다는 점에서다. 김영삼 정권에 치명상을 입혔던 청와대 부속실장 장학로씨 비리 폭로가 국민회의가 제보자를 매수해 이뤄졌다는 얘기는 아직 제보자 일방의 주장이지만 약정금액 일부의 전달 등 전후 사정으로 미뤄 일축하기 어렵다. 제보자는 "약속한 대가를 받지 못했다"며 민주당과 당시 총재였던 김대중 대통령을 상대로 약정금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 역시 사실관계를 떠나 그 자체만으로도 충격적이다.

이 폭로가 더욱 눈길을 끄는 까닭은 병풍사건의 김대업씨와 민주당 간의 뒷거래 의혹이 덧붙여진 때문이다. 민주당은 전과(前科)가 있는 金씨를 '의인'으로 치켜세우며 그의 증언을 토대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올해 내내 몰아붙였다. 그런데 제보자의 녹음 테이프 내용대로라면 폭로사실의 진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김대업 면담보고서'에 뒤이은 이 폭로로 사건 전체의 조작 가능성마저 제기될 수 있다.

물론 감춰진 비리·부정은 파헤쳐야 하고, 그 고발인은 보호돼야 한다. 현대에 대한 4천억원 대출 의혹 폭로 등이 그런 사례가 될 터다. 하지만 돈을 바라고 폭로하는 행위는 비판받아야 한다. 특정 세력이 돈을 미끼로 제보를 흥정하거나 폭로를 사주하는 처사도 다를 바 없다. 민주당은 '장학로 비리 폭로 매수'를 당간부 개인이 했는지 모르나 당은 모르는 일이라고 얼버무리고 있다. 이같은 대응은 공감은커녕 의혹만 키울 뿐이다. 더 이상의 불행한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청와대와 민주당은 이 사건을 포함한 모든 의혹의 전말을 소상히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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