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이라크 독자 공격 길 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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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미국 하원과 상원이 10일과 11일 대 이라크 무력 사용 허용 결의안을 압도적 표차로 통과시킴으로써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유엔에서 이라크에 대한 새로운 결의안 채택이 무산될 경우 곧바로 이라크로 '나 홀로' 진격할 수 있는 지름길을 확보했다.

결의안은 그동안 언어적 수사(修辭) 차원에 머무르던 미국의 대 이라크 최후통첩을 문서화한 것이며, 최악의 사태에 대비한 전쟁선포 예약이라고 할 수 있다. 이라크 진격로에 가로놓인 마지막 국내 관문인 '결의안 의회 통과'가 마무리됨에 따라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가 무장해제를 거부하면 즉각 군사력을 사용한다'는 내용의 초강력 결의안을 채택하도록 유엔을 더욱 세게 밀어붙일 수 있는 추진력을 얻게 됐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프랑스·러시아·중국은 미국과 대립하면서 자동적인 군사공격은 유보하는 유연한 내용의 결의안을 추진 중이다. 유엔 결의안 채택과 관련,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유엔에 허용된)시간은 수일이나 수주일이지 수개월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결의안 채택 작업과 더불어 행정부는 중동의 군사력 증강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한편 표결에서 부시 대통령은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이 1991년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를 응징하기 위해 의회에 요청했던 전쟁 결의안 표결 때보다 더 높은 지지를 받았다. 당시 하원의 표결 결과는 2백50 대 1백83이었고, 상원에서는 52대 47로 가까스로 통과됐다.

내용에서도 이번 결의안은 대통령에게 거의 무제한적 군사력 사용을 허용했다는 점에서 파격적이다. 91년 결의안은 '쿠웨이트에서 이라크 축출'로 군사력 사용을 제한했지만 이번엔 '이라크의 위협으로부터 미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라는 추상적 표현을 동원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의 무장해제를 넘어 평소 벼르던 후세인 정권 교체까지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베트남전의 시초가 되었던 64년 통킹만 결의안 이래 이처럼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군사력 사용권을 대통령에게 부여한 것은 처음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결의안 내용이 이처럼 파격적이어서 국제사회에 좋지 않은 선례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결의안 반대를 주도해 온 민주당의 로버트 버드 상원 세출위원장(웨스트 버지니아)은 "이라크 문제는 의회가 헌법적 권한을 행정부에 양도한 또 하나의 사례"라고 비판했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jin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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