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병역특례]"이젠 폐지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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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66면

통상적으로 병역특례 제도라 했던 대체복무 제도는 병역의무자가 현역 복무 아닌 다른 영역에서 근무한 것을 병역의무 이행으로 인정하는 제도다.

1970년대 우리 나라 경제발전 계획에 의해 중화학공업 육성이 강조되면서 기술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이 제도는 당시 병역 자원 잉여 현상이 조건에 부합돼 큰 무리 없이 정착됐다.

이 제도는 국민 개병주의에 의해 병역의무를 대상자 모두에게 공평히 부과한다는 원칙 아래 시작됐다. 국가 기능의 다양성을 인정해 병력 충원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병역의무를 면제 내지 감면해 줌으로써 다른 부문에서 국가 발전을 꾀하는 것이었다.

2000년대 접어들면서 드러난 이 제도 운영의 큰 문제점은 80년대 이후 현저히 감소한 출산율로 인해 현역 입영 자원의 병력 수급상 균형점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이같은 추이는 앞으로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어서 대체복무 제도의 축소 운영이 불가피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폐지까지 검토해야 할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병역제도는 국가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일정기간 국민으로 하여금 군사적 업무를 수행하게끔 하는, 국가 유지에 필수적인 하나의 틀이다. 언제라도 군이 필요로 하면 병력을 제때에 채워 줌으로써 전투력을 극대화해야 한다. 우리가 잠재 적국으로 오랫동안 인식해 왔던 북한과 화해 분위기가 형성된다 해서 누그러뜨릴 수 없는 제도다. 가상 적국이란 불변적인 것이 아니고 가변적이기 때문이다. 병역제도의 근본이 잠식될 우려가 있으면 곁가지부터 정리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다.

물론 그동안 대체복무 제도가 국가에 기여한 바가 매우 컸고 앞으로도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원래 이 제도는 국방 목적이 아닌 공공서비스 확대 목적에서 실시한 것이다.

최근에는 이공계 대학 진학 유도, 농어촌 후계자 등 사회 기능으로 해결해야 할 요소들을 병역제도로 해결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다. 이에 대해서도 국민의 바른 인식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극단적인 주장으로 현역복무 기간을 단축하면서라도 현 대체복무 제도의 기능을 유지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을 수 있다. 이는 우리의 병력 집약적 전력구조를 첨단무기체계 및 최신 교육장비 구비 등으로 정비한 새로운 전력구조로 전환하는 것을 전제로 논의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자칫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논리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제는 사회제도 각 부문이 원래의 기능대로 작동돼야 한다. 병역문제는 병역제도의 원래 모습을 찾아야 하고, 병역 대체복무 제도 활용을 통해 기능의 보조를 받았던 여타 사회 부문도 자립해야 한다.

현재 사회적으로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이공계 전문인력 양성도 이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공계 전문인력 양성과 관계되는 것은 산업기능요원 제도와 전문연구요원 제도 두 범주인데, 앞으로 대체복무 제도의 정비 방향에 맞추어 이를 논하면 다음과 같다.

대체복무 제도는 크게 세 가지 범주에서 정비해야 한다. 제도의 당위성, 사회의 형평성, 인력자원 관리의 효율성 등이 그것이다. 먼저 제도의 당위성은 공익 기여도가 개인 이익에 앞서야 하며, 사회의 형평성은 복무 부담 차이와 사회 직업 취득의 기회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 자원관리의 효율성은 국가 관리의 용이성이 해당되는데, 현 시점에선 국가 관리의 용이성을 제외한 나머지 두 범주는 설득력이 매우 약하다.

산업기능 요원인 경우는 설득력이 더 약하며, 전문연구요원의 경우 군 복무로 인한 두뇌 활용의 공백을 없앤다는 취지를 살리더라도 방위산업 등에 국한해야 한다. 기업·대학연구소 등은 세 가지 범주 측면 모두에서 설득력이 없다.

국민의 신성한 병역의무를 수단으로 한 행정편의적 사고는 이제 우리 사회에서 중단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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