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 인구가 겨우 金6개… "인도가 기가 막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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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이 끝난 뒤 주최국 호주의 통계국이 재미있는 통계를 하나 냈다. 각 참가국의 인구를 획득한 메달 수로 나눠 인구 대비 메달 순위를 따져본 것이다. 이에 따르면 바베이도스가 27만명당 1개(육상 남자1백m 동메달)로 1위였고, 인도가 10억명당 1개(여자역도 동메달)로 꼴찌였다.

남아시아의 맹주를 자처하는 인도는 영토와 인구에서는 대국(大國)이지만 유독 스포츠에서는 소국(小國)이다.

인도는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남자하키에서 금메달을 따낸 이후 지금까지 다섯차례의 올림픽에서 '노 골드'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인도가 올림픽에서 그런 대로 강세를 보이는 종목은 하키 정도가 고작이다.

인도의 미약한 스포츠 위상은 부산아시안게임에서도 마찬가지다. 8일 현재 인도는 육상·당구·골프와 자국에서 유래한 카바디 등에서 6개의 금메달을 따냈을 뿐이다. 앞으로 추가할 가능성도 별로 없다.

인도 스포츠는 왜 약세를 면치 못할까. 인도의 유력지 '파이오니아'의 스포츠 에디터인 쿠티카트 메논(63)은 '스포츠 육성 정책의 부재'를 주원인으로 들었다.

메논은 지난 37년간 인도 스포츠의 영욕과 부침을 지켜본 사람이다. 파이오니아는 창간 1백37년을 맞은 전통의 유력지로 윈스턴 처칠도 보어전쟁 당시 이 신문의 특파원으로 근무했었다.

메논의 설명에 따르면 인도 스포츠는 정부와 체육계의 무능 때문에 막대한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침체해 있다.

인도 정부는 다민족 국가를 통합하는 차원에서 스포츠에 관심을 갖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스포츠를 관장하는 청소년체육부는 하는 일이 거의 없다. 장관은 툭하면 바뀌고, 현실성없는 인기 발언만 난무한다.

넉넉하지도 않은 정부의 지원은 그나마 상당 부분이 인도 체육계라는 블랙홀로 빨려들어가 없어진다. 체육계 인사들이 개인적으로 착복하기도 하고, 기념관이나 동상 건립 같은 경기력과 관련없는 부문에 사용되기도 한다.

그 결과 인도 스포츠의 메카 역할을 했던 델리의 종합경기장은 70년대 운영예산 부족과 관계 당국의 무관심으로 버스터미널로 탈바꿈하고 말았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국제종합대회에 출전하는 인도 선수단에는 코치와 팀 닥터가 한명씩밖에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선수들이 스스로 알아서 훈련을 했고, 다치더라도 별다른 치료를 받지 못했다. 코치를 육성하고 팀 닥터를 초빙할 예산이 어디론가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스포츠의 요람 격인 학교체육이 운동장과 체육시설 부족 등으로 거의 고사되다시피 했다. 더군다나 70년대에 체육이 선택과목으로 된 이후 학생들의 스포츠에 대한 관심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경제가 나아지기 시작하면서 중상류층에서 스포츠 붐이 일고는 있지만 이들이 즐기는 것은 골프·테니스 등 일부 종목에 불과하다. 하류층의 경우에는 먹고 살기에 바빠 스포츠에 뛰어들 겨를이 없다. 그래서 최근까지도 인도의 스포츠 선수들은 대부분이 현역 군인·철도공무원·경찰 신분이었다.

인도 스포츠의 발전을 방해하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원인이 있다. 바로 크리켓이다. 인도 중산층의 여가생활은 TV 시청과 크리켓 경기관람, 딱 두가지뿐이라는 얘기가 있을 만큼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콜카타의 크리켓 경기장 '이든 가든'의 12만 수용 좌석은 매경기 매진된다. 축구도 크리켓의 인기에 가려 있다. 축구의 세미프로화가 시작된 게 3년이 채 안된다.

메논은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정부의 태도가 조금씩 바뀌고 있고, 많은 선수·지도자들이 해외에 진출해 선진 기술을 배우고 경험도 쌓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부산=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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