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가지 향 구별 위스키의 마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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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글래스고(스코틀랜드)=이종태 기자] "위스키는 어떤 원액을 얼마만큼씩 섞느냐에 따라 가격과 품질이 천차만별입니다."

수십 종류의 위스키 원액을 섞어 스카치 위스키를 만드는 과정인 블렌딩의 달인으로 통하는 스코틀랜드 얼라이드 도멕 그룹의 로버트 힉스(57·사진)는 최근 글래스고 본사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나 한국 위스키 시장의 고급화 추세에 대해 이 같은 소견을 밝혔다.

발렌타인 위스키를 생산하는 얼라이드 도멕에서 블렌딩을 총지휘하는 최고 책임자(마스터 블렌더)인 힉스는 "위스키는 숙성연도뿐 아니라 술통의 종류·증류법·술통 주변의 공기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며 "똑같은 17년산이라고 해서 가격과 품질이 같을 수는 없다"고 차별론을 폈다.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 원액을 생산하는 증류소는 2백여 곳. 이들 증류소마다 원액의 향과 맛이 독특하기 때문에 원액을 몇 종류 쓰고, 얼마만큼씩 섞느냐에 따라 위스키의 맛과 품질이 좌우된다. 따라서 향이 각양각색인 원액을 배합해 소비자 입맛에 맞는 새로운 향을 만들어내는 게 블렌더의 역할이라는 것.

위스키 원액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눈다. 싹이 튼 보리(맥아)를 증류해 나온 원액은 몰트 위스키라고 한다. 옥수수 등 곡물을 원료로 만든 원액은 그레인 위스키라고 한다.

그는 "몰트 위스키만으로는 맛이 강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그레인 위스키를 섞어 부드러운 맛을 낸다"며 "몰트 위스키가 많이 함유될수록 우수한 위스키"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한국 시장만을 위해 개발한 발렌타인 마스터스의 경우 몰트 위스키 45가지, 그레인 위스키 4가지를 섞어 만들었다고 그는 소개했다. 그러나 이들 49가지 원액을 얼마만큼씩 섞었는 지는 극비에 해당한다는 것.

30년 뒤에 생산할 발렌타인 30년산의 원액 배합 비율을 이제 막 결정했다는 그는 4천여 가지에 달하는 위스키의 향을 단번에 구분하는 초인적 후각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23년 동안 보조 블렌더로 일하다 93년 얼라이드 도멕의 마스터 블렌더 자리에 올랐다.

ijot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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