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년에도 남아도는 쌀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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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태풍과 집중호우가 농촌에 드리운 시름이 깊다. 정부는 올해 쌀 생산량이 태풍과 일조량 부족으로 지난해보다 3백50만섬 안팎 줄어든 3천4백40만∼3천5백만섬 정도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달 말께의 최종 작황조사를 기다려봐야 하나 1996년 이후 7년 만에 흉년을 피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쌀농사에서 중요한 것은 농가의 소득보전이다. 특히 추수기에는 매년 예외없이 홍수출하로 쌀값 폭락의 피해를 겪어왔다. 올해는 적기 추곡수매와 종합미곡처리장에 대한 지원 확대 등 민간유통을 활성화해 농민들이 이중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방지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해 작황이 출렁거렸다고 양곡정책의 기본방향이 바뀔 수는 없다. 국내 쌀 재고는 북한에 약속한 지원분을 제외해도 10월 말 1천40만섬 정도가 된다. 그러나 쌀 재고 과잉은 한두 해에 끝날 사안이 아니어서 흉년이라 하나 올해도 생산량은 소비를 웃돌아 내년 10월 말에는 재고가 1천2백만섬에 이를 전망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적정 권장량의 두배가 되는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는 각일각 다가오는 시장개방 압력이다. 더구나 최근 대만의 쌀시장 개방 결정으로 우리의 입지는 더 좁아지고 있다. 쌀개방으로 관세화를 선택할 경우 수입쌀에 많아야 4.6배의 관세부과가 가능하나 국제시세와의 격차는 5∼7배에 이른다. 결국 차액만큼은 외국쌀의 국내 시장 잠식이 우려되고 있다.

이에 대한 정부의 쌀산업 대책은 고품질 중심으로 생산체제를 전환하고 시장기능을 살려 수급균형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논란이 여전하고 정책의 추진력 역시 미덥지 못한 게 한두 구석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길게 보아 무엇이 진정으로 농민을 돕는 길인가를 찾는 일이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 쌀개방을 맞으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농민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흉년의 아픔이 크겠지만 양정(糧政)개혁의 강한 의지를 허물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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