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주 개발은 어떻게]발묶인 양빈… 특구계획 표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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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신의주 특별행정구의 초대 장관으로 임명된 양빈(楊斌)이 4일 중국 당국에 연행-가택연금 됨에 따라 북한 개혁·개방의 교두보가 될 것으로 기대됐던 신의주 특구 계획이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특히 북한은 신뢰하기 어려운 인물을 국가의 명운을 걸고 추진하는 사업의 책임자로 임명하는 등 인선과정과 의사결정 과정에 큰 문제점이 있음이 밝혀짐으로써 책임자 문책 등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북한의 개혁은 정체하거나 퇴보할 우려마저 있다.

◇신의주 특구 운명은=楊장관이 신의주 개발과 관련해 전권(全權)에 가까운 막강한 권한을 북한 당국으로부터 위임받았다. 따라서 그의 발목이 완전히 묶이면 투자 유치에 비상이 걸린다. 개발 기대에 부풀어 진출을 타진하던 우리 기업도 발걸음을 돌리게 되고 화교 자본이나 유럽연합(EU) 등 서구를 대상으로 한 투자설명회도 당분간 열기 어려워진다. 전력·통신 등 신의주 지역의 인프라 조성을 위한 중국 랴오닝(遼寧)성 정부 및 단둥(丹東)시 당국과의 협력문제도 벽에 부닥친다. 신의주 특구 개발에 필수적인 북·중 정부 간의 조율도 꼬일 수밖에 없다.

행정부와 입법회의 구성 등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제동이 걸린다.

결국 楊장관의 재기가 어려워지면 신의주 특구는 태동 단계에서 방향타를 잃어버릴 수 있다. 북한 당국으로서는 홍콩 등의 법제를 연구하고 자본주의 개방을 위해 중국과 서방에 전문가를 연수 보내는 등 준비를 해왔다지만 실제 특구의 문을 열기 위한 준비는 취약하다는 것이 특구 설치 발표 이후 진행과정을 지켜본 관측통들의 분석이다.

◇북한 어떻게 나올까=북한측은 당분간 사태 추이를 좀 더 지켜보며 대응책을 마련할 전망이다. 중국이 연행에서 풀려난 楊장관을 자택에 연금함으로서 사태의 추이를 아직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북한이 중국측의 협력을 이끌어 내기 위해 궤도수정을 모색할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楊장관 임명은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꺼낸 회심의 카드였다는 점에서 평양측의 충격은 적지 않을 것이다. 楊장관이 김정일에게 거액을 제공했다는 설까지 나오는 마당에 楊장관의 연금은 金위원장의 리더십에 상처를 준 셈이다.

물론 북한체제의 특성상 절대권력을 구축하고 있는 김정일 위원장의 리더십에 직접적으로 도전할 세력이 생겨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이번 일은 김정일 위원장의 개혁 추진에 불만을 갖는 세력을 자극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신의주 프로젝트를 주도해온 조창덕 내각 부총리나 김용술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장 등 북한 개혁의 주도세력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정부 표정=楊장관의 돌출성 발언을 걱정스럽게 지켜보던 통일부는 신의주 특구 개발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신의주 개방이 대북 화해·협력정책의 성과물로 부각되기를 내심 기대해왔기 때문이다. 또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특구 지정 등 남북간 합의 이행에 불똥이 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봉조(李鳳朝)통일부 통일정책실장은 4일 부산에서 외신기자를 상대로 한 햇볕정책 설명회에서 "그의 법 위반과 신의주 특별행정구 개발 계획은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yj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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