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같은 프로레슬러 꿈 접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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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와! 저 누나, 장난 아니데이."

경남 양산체육관 레슬링 계체량장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부산체고 레슬링부 학생들이 한 여성 레슬러를 보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쩌렁쩌렁한 기합소리와 쉴새 없는 훈련으로 남자 선수들의 기를 죽이는 이 선수는 일본의 하마구치 교코(浜京子·24·사진)다. 그는 세계선수권대회 72㎏급을 3연패한 월드스타지만 그동안 여자레슬링은 아시안게임 종목이 아니어서 종합대회 출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위에선 아시안게임 우승은 당연하다고 하지만 정작 그는 "다른 선수들이 어떻게 준비했는지 모르니 결코 장담할 수 없다"며 조심스러워 한다.

와다 다카히로 코치는 "하마구치는 정신력이 매우 강한 선수다. 마치 한국 선수들 같다"고 평했다.

그는 1970∼80년대 반칙을 잘 하고 태그매치에 유난히 강했던 일본의 유명 프로레슬러 '애니멀 하마구치'의 딸이다.

하마구치는 열네살 때 아버지같은 프로레슬러가 되기 위해 아마추어 레슬링을 시작했다. 기본기만 배우고는 프로로 전향할 생각이었다. 세계 정상 수준인 일본 여자 레슬링에서 곧 두각을 나타낸 하마구치는 97년엔 프로레슬링 아마추어 이벤트에 나가기도 했다.

일본 프로레슬링협회는 그에게 특별상을 주는 등 프로레슬링계의 새로운 스타 만들기를 시도했다. 아버지 하마구치는 신인 양성으로 유명한 프로레슬링 도장 '하마구치 짐'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마구치 교코의 프로전향은 시간문제로 여겨졌다.

하지만 하마구치는 계속 아마추어 레슬러로 머물고 있다. 그는 "승부를 떠나 스포츠맨십을 강조하는 아마레슬링을 사랑한다. 그래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해야지 하다가 지금까지 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는 프로레슬링계로 뛰어들 생각이 없어졌다"며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도 출전해 꼭 금메달을 따겠다"고 말했다.

양산=성호준 기자

kar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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