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유럽 방송계 'TV판 냅스터'에 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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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TV 광고주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한국이 아니라 미국과 유럽 이야기다. '리플레이 TV'라는 인터넷 연결형 디지털 방송프로그램 녹화기기가 이 지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 사이트는 www.replay.com)

미국의 나스닥 상장사인 소닉블루가 개발한 리플레이TV는 방송 예약녹화는 물론, 인터넷으로 웹사이트나 다른 사람의 컴퓨터에 있는 TV프로그램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웹사이트와 디지털 녹화기의 이같은 결합은 새로운 미디어의 탄생을 말해주고 있다. 편집이 가능할 뿐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다른 사용자에게 전송도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프로그램 앞뒤나 중간에 들어가는 광고를 삭제한 상태로 편집한 다음 필요로 하는 다른 이용자에게 보낼 수도 있다.

이미 미국에서는 50만명 이상의 시청자가 이 방식으로 TV를 시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시장전문 연구기관인 MFA는 내년에 이 같은 디지털 비디오 녹화기가 1백만대 이상 판매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유럽에서도 이 녹화기기가 인기를 끌고 있다.영국에서는 티보(www.tivo.com)사를 비롯해 소니·NBC·AOL 등이 이 시장에 뛰어 들고 있다. 독일 패스트 TV 서비스가 개발한 녹화기기의 최대 용량은 40기가 바이트로 약 50시간에 이르는 분량의 프로그램을 녹화할 수 있다. 가격은 1천 유로(약 1백20만원) 정도로 아날로그나 디지털 프로그램 모두 예약 녹화가 가능하다.

이 디지털 기기는 대량 송신도 가능해 개인이 TV 제작자처럼 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녹화한 프로그램을 자기 취향대로 재편집해 인터넷을 통해 원하는 이들에게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개인들이 방송을 통제하고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예를 들어 영국의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약 70%가 광고를 차단할 수 있기 때문에 이 기기를 애용한다고 답변했다.

TV 방송사업자와 광고주들은 이같은 시청자들의 시청 형태 변화로 광고와 경영에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까 노심초사하는 형국이다. 미국과 유럽은 중간 광고가 허용돼 있어 영화 등 프로그램을 시청할 때 불쑥불쑥 등장하는 광고로 시청자들의 불만이 높다.

그러나 문제는 리플레이TV 웹사이트가 저작권법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TV방송국이 소유한 지적 재산(프로그램)을 임의로 편집해 다수에게 배포하는 행위가 저작권에 위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냅스터 프로그램으로 음악을 자유롭게 복사하는 것처럼 상업적 이윤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개인적인 시청을 위해 이같은 웹사이트와 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법적인 해석도 있다.

한국은 아직 리플레이TV 같은 웹사이트와 기기가 개발되지 않아 '발등의 불'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유럽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만큼 조만간 유입될 가능성이 크므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방송진흥원의 강만석 박사는 "자칫하면 우리 시장을 외국 회사들에 넘겨줄 수 있다"며 "방송기술을 담당하는 정책 당국과 산업계가 대응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택환 미디어 전문기자

twkim@joo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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