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서 다시 만난 '숙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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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양정모(50)와 그의 숙적이던 '몽골의 영웅' 제베그 오이도프(53)가 부산아시아드에서 1일 다시 만났다. 오이도프는 몽골 레슬링팀의 그레코로만형 감독으로 부산을 방문했고, 양정모는 오이도프가 참가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부산을 찾았다.

오이도프는 "한국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서 양정모 선수를 만나게 되니 정말 감회가 새롭다"며 "부산에는 양정모의 이름을 딴 양정모체육관도 있더라. 정말 출세한 것 같다"고 말했다.

양정모씨는 "둘째딸 바양자르갈이 부산에서 공부한다는 얘기를 듣고 지난 7월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해 양국의 교류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라고 격려한 적이 있다"며 "매년 10월 몽골에서 열리는 오이도프배 국제레슬링대회에 꼭 가볼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로 몽골팀 통역을 맡고 있는 바양자르갈은 "양정모 아저씨가 아버지보다 훨씬 젊어 보여 26년 전 아버지하고 경기한 사람이라고 믿을 수 없었는데 오늘 만나보니 사실이었다"고 말했다.

양정모씨는 "몽골 사람들이 육식을 많이 해 나이가 더 들어보이는 것 같다"며 "그러나 지금 다시 맞붙는다면 누가 이길지 알 수 없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오이도프는 "한살이라도 더 젊은 양정모가 이길 게 확실하다"고 맞받았다. 그의 외아들 자미양(20)도 카누대표팀의 일원으로 현재 부산아시안게임에 참가 중이다. 오이도프의 부인은 공과대학 교수며 첫째딸은 모스크바에 유학 중이고 막내딸은 연극배우다.

오이도프는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을 앞두고 몽골 선수들과 방한했을 때 태릉선수촌에서 양정모씨에게 코치받아 큰 도움이 됐다"고 감사를 잊지 않았다.

오이도프는 그때 양정모씨에게서 컬러TV를 선물받았는데 전파 수신방식이 달라 사용하지 못하다가 지난해부터 쓰고 있다며 성능이 너무 좋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양정모씨는 74년 테헤란 아시아선수권에서 당시 세계챔피언이던 오이도프에게 역전승을 거두고 금메달을 땄으며, 이듬해 소련 민스크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패했다. 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는 오이도프에게 8-10으로 졌지만 결선리그 출전선수 세명이 모두 1승1패를 기록해 벌점이 적은 양정모씨가 우승, 건국 이후 한국의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영광을 안았다.

부산=성호준 기자

kar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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