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주특구-북한전문가에듣는다]고유환 동국대 교수·북한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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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신의주 특구 지정과 초대 행정장관에 네덜란드 국적의 화교 자본가 양빈이 임명된 것은 북한 지도부의 개혁·개방 의지를 서방세계에 확인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북한 당국이 신의주 특구에 자치권을 부여하고 외국인을 초대 장관으로 임명함으로써 대외적으로 '일국양제'를 수용하는 개방의지를 보여주었다. 당초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체제보장을 받은 다음 개혁·개방을 본격화할 계획이었으나 부시 미 행정부의 대북 강경책으로 개혁·개방을 먼저 추진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미국의 대북 강경책을 누그러뜨리려는 것이다. 네덜란드 국적 인사를 초대 장관으로 임명한 것도 미국에 대한 방어망을 강화하겠다는 심리전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북한 주민들이 '외국인의 장관 임명'등의 개방조치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것이다. 그동안 북한은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에 따라 '혁명의 주체를 수령·당·대중의 통일체'로 규정하고 사회주의 생산양식과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양립이 불가능하다는 논리를 펴왔다. 그러나 신의주 특구 지정을 계기로 사회주의 생명체 내에 혈액형이 다른 자본주의 생명체가 자라고 있는 데 대해 북한 주민들은 인식의 혼란을 느낄 것이다. 지금 북한이 추진하고 있는 개혁·개방 노력은 중국이 추진했던 개혁·개방정책의 역순이다.

중국은 사상해방·실사구시라는 사상이론적 조정을 거친 다음 당의 공식노선으로 채택하고 이를 법제화한 다음 개혁·개방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북한은 사상이론적 조정 없이 지도자의 결단에 의존해 개혁·개방을 추진하기 때문에 일관되게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 지 의문이 든다.

이제 중요한 것은 북한이 내부의 개혁·개방과 관련한 법적·제도적 정비를 이룰 수 있느냐는 점이다.내부 개혁 없이 개방만 추진할 경우 외국 자본이 안심하고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메모 수준의 '말씀'으로는 경제개혁을 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북한 지도부의 사상 해방이다. 북한 당국이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가능하다는 중국의 역사적 경험을 수용해 이를 당의 기본노선으로 채택할지 주목된다.

이에 따라 북한이 다가오는 10월 10일 당창건 기념일을 전후해 조선노동당 제7차 당대회를 개최해 개혁·개방 노선을 공식화하고 이를 법제화한다면 북한의 개혁·개방 의지를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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