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집안일 베테랑 이제 딴일 하러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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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2면

결혼과 함께 일을 오랫동안 쉬었던, 혹은 일을 한번도 해보지않은 주부라면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보다 '어떤 자세로 일을 시작해야 할까'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일을 하고 싶은 주부들을 귀담아둘 만한 충고를 모았다.

■자기부터 파악하자

☆김희정(사비즈 대표)=일을 시작하기 전에 왜 일을 하고 싶은지, 꼭 해야 하는지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집안에서 누구 엄마, 누구 아내로 대접받는데 익숙해진 주부가 사회에 나가 맨몸으로 부닥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에 대한 결연한 의지가 없다면 중도에 포기할 수밖에 없다. 업종을 찾고 가게를 보러다니기 전에 자신에 대한 철저한 탐색부터 하자.

☆임언(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남들에게 유망한 직종이 자신에게도 맞는다는 보장이 없다. 무료 적성검사나 직업심리검사(www.work.go.kr→왼쪽 메뉴바의 직업정보→직업심리검사)를 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의견을 많이 물어보는 게 좋다.

■평생할 수 있는 일을 찾아라

☆최성애(부동산중개사)=결혼 후 학습지 교사 등 틈틈이 일을 해봤지만 평생 할 만한 일이란 확신이 안들었다. 부동산 중개인의 경우 언젠가 내 가게를 낸다면 정년없이 평생 할 수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기에 3년 전 8개월간 학원을 다닌 끝에 자격증을 땄다. 지금은 동네 부동산업소에서 직원으로 일하는데 창업을 위한 경험을 쌓는다고 여긴다.

■투자는 필수다

☆김은주(출장요리사)=세살배기 막내를 끼고 동네 복지관을 몇 년 동안 전전하며 한식·양식·일식·중식 등 조리사 자격증을 4개나 땄다. 그걸로도 부족한 것 같아 전문 학원의 출장요리사반을 수강했고 1년 이상 보조기간을 거쳐 정식 출장요리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힘겨운 보조기간을 견디지 못해 그만두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세상엔 공짜가 없는 법이니 내 일을 갖기 위해선 이 정도 시간과 노력은 필수라고 생각한다.

■가족을 훈련시켜라

☆조윤정(인터넷쇼핑몰 운영자)=일을 시작한 뒤엔 살림을 예전처럼 깔끔하게 할 수도,식사시간을 칼같이 맞추기도 힘들어졌다. 하지만 가족들의 기대수준은 예전과 똑같아 힘들다. 어쩌다 일보러 나갔다가 귀가가 늦으면 모든 식구가 손가락만 빨며 기다린다. 본격적인 가사분담을 요구하진 못하더라도 엄마(아내)가 일을 시작하기 전과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건 이해시켜야 한다.

"일하고 싶다. 그런데 할 일이 없다."

결혼해 자녀를 낳고,이제 그 아이들이 웬만큼 커서 자기 시간을 갖게 된 주부들에게 일에 대한 생각을 물으면 너나없이 하는 대답이다. 널린 게 일인데 일이 없다니…. 속 모르는 사람들은 핀잔이라도 줄 법하다.

그러나 막상 일을 찾아나서면 일이 별로 없는 건 사실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할 만한' 일이 없다.

외국에선 교수부인도 수퍼마켓 점원으로 일한다는데 눈이 너무 높은 것 아니냐고? 말은 쉽다. 하지만 만약 우리 나라에서 교수부인이 동네 수퍼에 나가 일하다간 남편이나 시댁에서 '몇 푼 벌겠다고 집안 망신시키느냐'며 큰 소리 나기 십상이다.

좀더 남보기에 그럴 듯한 일을 찾아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본다.백화점이며 화장품회사며 모니터 모집공고가 꽤 눈에 띈다.'○○백화점 모니터 응시자격 25∼35세 주부.''○○식품 모니터 모집대상 25∼34세 주부.' 미스코리아를 뽑는 것도 아닌데 연령제한은 왜 필요한지. 아이를 떼놓고 나서려면 얼추 30대 중반은 돼야 하는데, 할 만한 일이다 싶으면 이젠 나이가 발목을 잡는다. 설령 나이가 맞더라도 지방에 살거나 대학을 나오지 않은 주부라면 모니터 일은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어렵사리 일자리를 얻는다 해도 배(효용)보다 배꼽(비용)이 더 큰 경우가 허다해 오래 버티기 힘들다.

"모백화점 상담센터에서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주말도 없이 일했지만 월급은 1백만원도 채 안됐다. 출·퇴근 시간까지 합치면 거의 온종일 일하는 셈인데 아이들 놀이방에 맡기는 비용과 교통비·외식비 빼면 남는 게 거의 없었다. 집안 살림도 엉망이 됐다. 이러려면 뭐하러 일하나 싶어 몇 달 안가 그만뒀다." 일류대를 졸업한 30대 후반 주부의 실패담이다.

그래도 주부들은 여전히 일하고 싶다. 그렇다면 뭔가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한다. 나름대로 전문성이 있어 남들이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일, 아예 처음부터 맞벌이 주부로 나선 사람들과 달리 살림도 병행할 수 있는 일, 나이와 상관없이 시작해 평생할 수 있는 일, 떼돈은 못벌어도 최소한 들인 시간과 품값은 빠지는 일….

이런 조건을 고려해 전문가들과 선배 주부들이 권하는 일거리와 관련 사이트를 따로 정리해 소개한다(표 참조). 자신의 적성과 처지에서 어떤 일이 맞는지 곰곰 생각해보자. 어쩌면 할 만한 일이 어디엔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글=신예리, 사진=김성룡 기자

shi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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