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사람은 다시 안쓴다' 日기업 불문율 깨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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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한번 내보낸 직원은 다시 안 쓴다는 일본 기업들의 불문율이 깨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일본 기업들은 연공서열제에 매달려 재입사의 길을 차단해왔으나 최근 구조조정을 마무리지은 기업들이 감원했던 사원들 중 필요 인력을 재고용하고 있는 것이다.

2000년부터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따라 전사원의 15%인 2만2천여명을 내보낸 닛산자동차는 상반기부터 훈련없이 즉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퇴직 기술자들을 재고용하기 시작했다.

회사가 되살아나면서 일손이 달리게 되자 신규채용을 하기보다 구조조정기에 회사를 위해 순순히 일자리를 떠났던 퇴직자들을 우선 고용키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9월까지 70명이 응모해 10% 정도가 재입사했다.

후지제록스도 지난 8월 40대 초반의 기술직 퇴직자를 재고용키로 하고 재입사자에 차별이 가해지지 않도록 기존의 연공서열식 인사제도를 손질하고 있다. 후지제록스는 앞으로 기술직 이외에도 사무직까지 재고용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밖에 미쓰비시(三菱)상사·리크루트·지요다(千代田)화공건설 등도 인력이 필요할 경우 구조조정을 위해 내보냈던 퇴직자들을 다시 불러들이고 있다.

원래 일본 기업이 '퇴직자 재고용 금지조항'을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사원이 스스로 회사를 떠나는 것을 일종의 '배신'으로 여기는 종신고용제적 문화가 뿌리깊어 재고용이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활발해지고 성과주의 인사제도가 광범위하게 도입되면서 "실력만 있으면 재고용해도 문제될 것 없다"는 쪽으로 경영자들의 인식이 바뀌게 됐다.

특히 기업으로서는 고용 후 교육훈련에 대한 부담이 들지 않으므로 신입사원 채용에 비해 유리하다는 것이다. 재입사하는 직원들도 직장 분위기에 적응하기 쉬우므로 단시간 내에 생산성을 올릴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와 관련,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일본 기업들이 인건비 절감이라는 '수비형 경영'에서 경쟁력 강화라는 '공격형 경영'으로 전략을 바꾸는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도쿄=남윤호 특파원

yh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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