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 푸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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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허시에게 충성하라. 그는 우리에게 잘해줬다."

1937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허시 마을의 주민들이 외친 구호다. 노조원들의 파업에 맞시위를 벌인 주민들 덕분에 이내 공장은 다시 문을 열었다. 주민들이 가리킨 '허시'는 미국 최대의 초콜릿 회사 허시푸드의 창업주이자 이 마을을 만든 밀턴 허시(1857∼1945)였다.

허시는 가난 때문에 변변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제과업에 뛰어들었으나 1900년 캐러멜에 초콜릿을 입혀 만든 초콜릿 바로 대성공을 거뒀다. 이후 고향 인근에 대규모 공장을 지으면서 허시푸드를 세웠다. 허시는 종업원들을 위해 극장과 댄스홀·체육관·동물원·교회 등을 무상으로 지어줬고, 전기와 상수도, 심지어 지역 신문사 운영에도 돈을 댔다. 1906년에는 마을 이름도 허시로 정해졌다. 오죽 잘해줬으면 주민들이 나서서 노조의 파업을 막았을까. 허시 마을은 지금도 주민 1만2천명 중 절반이 허시푸드 종업원이며, 나머지도 관광수입 등으로 먹고 사는 허시 일색의 도시다.

그런 허시 마을이 올들어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지주회사이자 자선재단인 허시 트러스트가 지난 7월 경영개혁과 자산 다각화를 위해 허시푸드 매각에 나섰기 때문. 허시푸드는 지난해 매출액 45억6천만달러에 2억달러 남짓 순익을 내긴 했지만 최근 3년간 매출 및 순익증가율이 계속 뒷걸음질치고 있다. 자산의 절반 이상이 허시푸드 주식인 지주회사 입장에서는 불안을 느낄 만했다. 마침 세계 최대의 식품회사인 네슬레사가 주당 60달러대이던 허시푸드 주식 값을 82달러선으로 후하게 쳐준 인수가격(1백15억달러)을 제시하면서 협상은 급진전 되는 듯 했다.

문제는 주민들이었다. 허시푸드 매각이 실업과 복지 후퇴를 초래할 것으로 우려한 주민들이 종업원들과 힘을 합쳐 "허시를 팔지 말라"며 시위를 벌였다. 9월 초 관할 지방법원은 허시푸드를 팔려면 법원 승인을 받으라는 판결로 매각에 제동을 걸었다. 허시 트러스트는 2주일을 숙고한 끝에 지난주 매각결정을 취소했다. 주민들이 이긴 것이다. 그러나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최근호에서 "(주민들이)결국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썼다. 네슬레의 자본과 네트워크를 타고 세계시장으로 도약할 기회를 잃은 허시푸드가 냉혹한 시장 경쟁에서 패배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과연 밀턴 허시에게 '충성'한 것일까. 아직은 모른다. 그러나 곧 알게 될 것이다.

손병수 논설위원

sohnb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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