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m 안에서의 모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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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마음을 알기란 어렵다는 말처럼 사람을 제대로 알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개인도 이러하거늘 하물며 한번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 중에서 누가 좋은 인물인가를 판단해 국민의 대표자로 뽑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보통 후보들의 몇마디의 말, 몇십초 동안 화면에 비친 이미지를 통해 그 사람을 잘 아는 것처럼 판단해 선택한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 대통령 선거전략의 핵심은 후보의 이미지 조작이다.

수천만명의 유권자들이 일일이 후보를 만나 그의 됨됨이를 알아볼 수는 없다. 이 공간적인 제약을 보완할 수 있는 길은 시간뿐이다. 그러므로 후보가 될 사람들은 미리미리 나서서 그들이 어떤 인물인가를 알리고 검증을 받아야 한다. 미국의 대통령 예비선거가 1년 전부터 벌어지는 까닭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우리의 이번 선거에도 한 후보는 근 5년 동안 이리저리 파헤쳐졌고, 다른 후보는 예비선거를 통해 어떤 인물인지 드러날 만큼 드러났다. 대통령 선거를 불과 석달 앞에 놓고 출마를 발표한 정몽준 의원은 바로 이런 점에서 문제를 안고 있다.

사실 국민들은 그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다. 그저 월드컵 경기장의 먼 발치에서, 혹은 경기 시작 전 인사말을 하는 화면을 통해 인물좋은 현대 재벌의 아들이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구나 하는 정도였다. 물론 월드컵을 치르기 전부터 "한국팀이 몇강 안에 들면 출마한다더라"는 뜬 소문은 무성했다. 그러나 언론이나, 경쟁자들이 소문만 듣고 "당신이 대통령 자격이 있는지 검증을 해봅시다"라고 할 수는 없었다.

대통령 출마는 하루 아침에 결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모든 조건을 계산한 후에야 할 수 있는 큰 결심이다. 그런 점에서 후보는 자신이 출마를 위해 고민을 했던 만큼 국민들도 선택을 위해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의 선거 행태로 보아 남은 3개월은 검증보다 다른 일로 소모될 공산이 크다. 민주당과 합당을 하느냐, 누구와 합쳐 단일후보를 만드느냐 등의 이합집산에 골몰하게 될 것이다. 그런 와중에 선거일은 어물쩍 다가올 것이다. 그의 늦은 출발은 바로 이 점을 계산했는지도 모른다. 출마 선언 후 한 언론이 현대의 간부 말을 인용, "50m나 1백m에서 보면 누구나 좋아할 타입이지만 10m 안에서 잠시 같이 있으면 그 정체를 알게 된다"고 소개한 바 있다. 그렇다. 우리는 1백m의 먼발치에서가 아니라 10m 안에서 그를 보고 싶고, 이미지가 아니라 실체를 알고 싶다.

그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우선 그의 정체성이다. 그는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며, 그와 같이 일할 사람은 누구며, 그가 끌고 갈 나라의 방향은 무엇인지 아는 바가 없다. 짧은 한 페이지의 출마변에는 정치개혁을 하겠다는 얘기 말고는 특별히 눈길을 끄는 얘기가 없다. 자세한 것은 10월 창당 때 발표한다니 그런 급조된 정책을 믿을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람을 잘 모르겠으면 그의 친구를 보라는 말이 있다. 그는 십수년을 의원으로 지냈다. 적어도 대통령이 되겠다면 2백명이 넘는 의원 가운데 단 열명이라도 그와 뜻을 함께 할 사람이 나왔어야 할 것이다.그의 출마선언장에 동료의원은 단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점 때문인지 국정을 초당파적으로 운영하겠다고 하는데, 초당파적인 것과 외톨이와는 분명히 다르다.

재산문제만 해도 그렇다. 총리 인준 때는 부동산 투기를 했느니 뭐니 하면서 20억원의 재산이 많다고 쥐잡듯이 하더니 재산이 수천억원이 되니 감각이 무뎌졌는지 별 얘기가 없다. 그뿐이 아니다. 그가 한국 최고의 재벌 가문 출신이라는 점에서 대통령이 됐을 때의 정책 결정이 국민의 경제와 어떤 이해관계를 가질 것인가를 면밀히 따져 봐야 한다. 대통령 주변 인사의 수십억 혹은 수백억원의 부정부패보다 오히려 더 큰 문제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성정에 대해서도 알고 싶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의 말을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그는 아랫사람을 가혹하게 다루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강 있게 사람을 다루는 것과 인격을 무시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좋은 리더십이 좋은 정부를 만들수 있기 때문이다.

10m 안으로 들어가 그의 모습을 알기에는 3개월이 너무 짧다. 제도를 보완할 시간도 없다.그의 성실성과 언론의 치열성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데 과연 가능할까. 그 점이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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