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의존도 너무 높아 산업 포트폴리오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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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한국에서 반도체 산업이 본격화한 지 20년이 지났다.

1980년대 초만 해도 '잘 될까?' 하는 의문부호가 더 많았다.그러나 이젠 반도체를 빼곤 한국 산업을 얘기하기 어렵다.90년대에 한국의 대표 산업으로 반도체가 급성장한 결과다.정보기술(IT)투자 중심으로 미국 경제가 호황을 누린 덕을 톡톡히 보았다.

90년대 중반 이후 반도체는 줄곧 수출 1위 품목이다.한 산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으뜸이다.

하지만 잘 나가는 산업의 비중이 크다고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반도체 단가가 오르내리고 수출이 어떤가에 따라 성장률 등 거시 경제지표가 함께 출렁거려 눈을 흐리기 때문이다.반도체가 조금 잘 되면 전체 경제가 덩달아 좋아진 것처럼 보인다.거꾸로 반도체가 조금 부진하면 나머지도 죽을 쑨 것처럼 나타난다.이른바 착시(錯視)현상이다.

지난해 내내 하이닉스반도체가 시끄럽자 나라 밖에선 한국 경제 전체의 불투명성이 높아진 것으로 보기도 했다.채권은행단이 하이닉스의 회사채 상환을 연기하자 미국은 '한국 정부가 나서서 특정 산업을 지원한다'며 통상압력까지 가했다.이 모두가 어느 한 산업이 너무 튄 탓이다.

국가 경제의 버팀목이 될 수 있는 중심 산업은 필요하다.그렇다고 어느 한 산업의 비중이 너무 크면 경제의 의존도가 높아지고 리스크도 커진다. 따라서 개인이나 기업과 마찬가지로 국가 경제 전체적으로도 산업의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90년대 이후 우리 경제를 먹여 살려온 반도체의 비중을 억지로 끌어내려선 안된다. 적어도 서너개의 다른 산업을 반도체와 어깨를 겨루도록 키워야 어느 한 산업에 기대는 정도와 리스크가 자연스럽게 줄어들고 국가 경제도 전체적으로 안정될 것이다.

꿈의 기술이라는 나노 기술 시대를 연 한국 반도체 산업의 역동성은 대단하다. 경쟁국인 미국과 일본을 따돌리고 삼성전자가 큰 일을 해냈다.

그동안 우리를 먹여 살려온 전통산업은 중국의 도전 속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성장 산업은 아직 성숙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반도체에 의존하면서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세계 무대를 뛰다가는 언제 발병이 날지 모른다. 마라톤도 혼자 달리면 쉽게 지친다. 선두 그룹에서 몇명이 같이 뛰면 기록도 좋다. 1위 반도체와 함께 달릴 주력 산업을 빨리 키우자.

jay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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