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 이모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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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8일 경의선·동해선의 남북 연결 착공식이 열린 두 현장은 50년 만에 생기를 띠었다. 참석한 실향민들에게는 만감이 교차하는 하루였다.

◇경의선=남측 구간의 최북단인 도라산역에서 북쪽으로 5백여m 올라간 철책선 앞. 1945년 9월 11일 기차가 멈춘 철책선 너머 경의선은 잡목림에 뒤덮여 철길의 형체를 볼 수가 없었다.

오전 11시15분 김석수 국무총리서리 등이 버튼을 누르자 폭죽 30여발이 터지며 굳게 잠겼던 DMZ 남방한계선 제2철문이 열렸다.

이어 '우리의 소원은 통일' 합창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철책선 남쪽과 북쪽에서 평화를 상징하는 빨간 장미 한송이씩을 든 소년과 소녀가 마주 걸어와 포옹하며 다시 하나되는 남북한의 모습을 연출했다.

이들 앞으로 도라산역에서 출발한 '통일열차'가 긴 기적을 울리며 다가왔다.

'낯설지 않은 새로운 길'이라는 플래카드를 붙인 이 열차의 기관사 김준호(37)씨는 "하루 빨리 군사분계선 너머로 기관차를 몰고 싶다"고 말했다.

행사가 끝난 뒤 파주지역 실향민들은 기관차 앞에 차례상을 차렸다. 비무장지대 안쪽의 장단읍이 고향이라는 이은섭(72)씨는 "언젠가 성묘를 할 수 있겠지"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식전행사에서는 평양 출신 가수 현미씨가 '보고싶은 얼굴'을 부르며 "보고싶은 명자야,길자야"라며 북에 두고 온 자매를 목메어 불러 장내를 숙연케 했다.

행사장에는 CNN·NHK 등 외신 기자들도 여럿 참석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유럽을 연결하는 수송로가 뚫리도록 가능한 모든 협력을 할 것"이라는 동영상 메시지를 보냈고,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아로요 필리핀 대통령 등 외국 정상 10여명의 축하 메시지도 도착했다.

◇동해선=오전 11시 군사분계선에서 4. 2㎞ 떨어진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송현리 통일전망대 부근 금강산 관광 임시도로 예정지에서도 1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이 열렸다.

정세현(丁世鉉)통일부 장관 등이 발파 버튼을 누르자 버스 한대가 지나다닐 정도의 비포장도로 위에 설치한 오색 풍선과 폭죽이 날아오르면서 맑은 하늘을 수놓았다.

이곳에서도 미수복 고성군 군민 50여명이 북의 고향을 향해 합동 차례를 지냈다. 한국전쟁 때 홀로 월남해 북에 두고온 가족·친지들이 그리워 고성군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 장관식(73·고성군 토성면)씨는 "옛날부터 철도·도로가 연결되면 통일이 곧 온다는 말이 있었다"며 기대감을 보였다.

통일전망대 앞 주차장에서 행사장으로 들어가는 1. 4㎞의 도로는 소형 차량이 겨우 통행할 정도로 비좁았으나 행사를 앞두고 육군 뇌종부대 공병대 장병들이 2주간의 작업 끝에 버스 한대가 통행할 수 있도록 도로 폭을 넓혔다.

김창우·이무영 기자

kcwsssk@joongang. co. kr

◇북한측 표정=18일 북한 금강산청년역과 개성역에서 각각 열린 동해선·경의선 철도 연결공사의 착공식에는 당초 예상보다 고위급 인사들이 몰려 이번 행사에 쏟는 북한 당국의 관심을 드러냈다. 특히 북한은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지난 4월 임동원(林東源) 청와대 외교안보통일특보와의 면담 때 제기한 동해선 연결 문제에 더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오전 11시 시작된 동해선 착공식은 김용삼 철도상의 보고와 철도노동자의 결의토론에 이어 참석 인사들이 11시30분쯤 발파식을 거행하면서 절정에 달했다. 북측은 역 인근 산중턱에 발파장소를 마련했으나 별다른 장식없이 폭약 10여발만 터뜨렸다.

이어 홍성남 총리와 김영성 남북장관급 회담 북측단장,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과 카를로프 주북 러시아 대사 등 10여명이 역사에서 1백m 떨어진 동해선 철도 중단점으로 이동해 첫 삽을 뜨자 노란색과 흰색 안전모에 작업복 차림인 40여명의 철도 노동자들이 일제히 작업을 벌여 본격적인 연결공사에 들어갔음을 알렸다.

洪총리는 연설 등은 하지 않았고, 단상에 앉아 연설이 끝날 때마다 박수를 치는 등 여유있는 표정을 보였다.

○…발파식장에는 오전 10시쯤부터 온정리 주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여성들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었으며 학생 1백여명이 붉은 기를 들고 공사장을 에워싸 분위기를 돋웠다.

특히 3천여명의 청중석 중앙에 정복차림의 군 관계자 5백여명이 자리해 철도·도로 연결공사가 군부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엿보게 했다.

금강산청년역 내부에는 7월 경제개선조치 이전의 요금표가 그대로 붙어 있었고, 철로는 녹슨 구간이 적지 않았다. 북한은 이날 오후 중앙TV를 통해 착공식 장면을 보도했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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