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7.1경제조치 2개월 전문가 좌담] "北 경제 일단 생기… 外資 유치가 관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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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북한이 지난 7월 1일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단행한 지 2개월이 지났다. 이번 경제조치는 북한 주민들의 구매력과 생산의욕을 높였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외부 지원과 공급 확대가 안정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에 빠질 위험성도 있다. 남성욱(南成旭) 고려대 교수, 양문수(梁文秀)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 오승렬(吳承烈)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과의 좌담을 통해 북한 경제관리 개선조치의 평가와 전망, 향후 남북경협에 미칠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진단했다.

편집자

▶오=물가와 임금인상,기업의 자율성 강화 등을 골자로 하는 북한의 '7·1 경제관리개선 조치'는 일단 주민들의 생산의욕을 높이는 긍정적 파급효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데는 시간이 좀더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지방의 취약계층은 평양 등 생활이 상대적으로 나아진 지역에 대해 상대적 박탈감을 가질 수도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어쨌든 북한 사회 전반적으로는 경제활동에 있어 활기가 보이지만, 이번 조치가 실물경제의 생산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화폐 착시현상'으로 끝날 수도 있다.

▶남=아직 심각한 부작용은 눈에 띄지 않고 있는 국면인 것 같다. 우선 임금 인상으로 일반 주민들의 구매력이 늘어난 점과 생산의욕이 증대된 것이 주목된다.

특히 북한 당국이 해외에 눈을 돌린 것은 커다란 변화라고 생각한다. 이번 조치의 성공 여부는 올가을 농산물 생산량과 6개월에서 1년 정도 공산품 공급상황을 지켜봐야 정확한 평가가 이뤄질 수 있다.

▶양=공장과 협동농장에서 실적제(인센티브제) 확대로 주민들이 경제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현상이 나타났다. 개선조치가 단기적 차원에서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원이 부족하다는 점이 문제다. 시장의 상품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인플레이션과 경제침체가 나타날 수 있다.

▶남=북한 당국은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외국의 기업과 국제금융기구로부터 자본을 유치하려고 할 것이다. 우선 북한은 일본과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일본 기업의 자본유치를 시도하겠으나,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 입장에선 배상금 명목의 현금지원을 바라지만 일본은 장기간에 걸친 플랜트 수출 쪽에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또 아시아개발은행(ADB)이나 국제부흥개발은행(IBRD)과 같은 국제금융기구로부터도 자본을 유치할 움직임을 보일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선 미국의 보증이 요구되므로 미사일 문제 등 대미(對美)현안에서 북한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 주목된다.

▶오=7월 조치는 국내경제 활성화에 초점을 둔 것이다. 우선 국내경제를 활성화하고 해외자본을 유치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상황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 당국은 이번 조치가 성공할 수 있는 후속조치를 취할 것이다. 93년 이후 중단된 5개년 계획과 같은 장기개발 청사진 제시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장기적 차원에서 북한 경제가 성공하려면 해외자본 유치가 필수적이다. 북한의 자원이 고갈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오는 17일 고이즈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는 것도 일본으로부터 직접 투자를 확보할 뿐만 아니라 국제무대로 향하겠다는 의지를 보임으로써 해외 자본을 유치하려는 포석이다.

하지만 일본은 현금으로 지원하는 것보다 한반도와 시베리아를 잇는 철도 건설에 경제협력이라는 명분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일본 경제가 쇠퇴기에 있고 공동화 현상을 보이기 때문에 국내경제도 활성화하고 대륙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일본은 프로젝트 베이스를 선호하고 있다.

▶양=일본의 배상금액과 지원시기가 북한이 원하는 대로 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일본은 북한의 노후화된 공장 보수 자금이나 현물지원을 몇년 간에 걸쳐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당장 북한 경제에 도움이 될만한 지원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다.

특히 북한 스스로 제도개선 노력을 하고 있지만, 사회주의 경제제도의 성격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도 북한의 향후 경제개혁 움직임에 제한을 가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미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취했다. 공급능력 증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순간이다. 자체의 능력은 한계가 있다.

따라서 급한 불은 한국의 지원으로 끄고 중장기적 차원에서 특구 지정 등 투자환경개선 조치가 뒤따르지 않을까 본다.

▶오=북한이 경제특구를 확대할 의지를 엿보이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북한 당국이 나진·선봉지역의 경제특구를 실패했다고 인정하지는 않지만 객관적으로 보기에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

북한 자신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나진·선봉 특구 운영을 통해 나름대로 충분한 정책실험과 경험을 얻었을 것이다.

또 몇년 전부터 신의주를 사실상 경공업 생산수출기지로서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는 신의주뿐만 아니라 개성·원산 등지에 소규모 공단형태로 외국기업이 입주하는 환경을 조성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이 앞으로 특구지향적 정책을 강화할 것은 분명하다.

▶양=경제특구 지정은 위치선정이 관건이다. 나진·선봉 자유무역지대는 변방의 국경지대였다. 그래서 투자가치가 떨어졌다. 하지만 신의주가 경제특구로 지정되면 차원이 다르다. 국경지역이지만 수도인 평양과 넓은 중국시장과의 근접성, 신의주 자체의 산업시설 등으로 효과를 볼 수 있다.

또 특구를 지정하더라도 특구 내에서 기업활동 보장과 자원공급이 중요하다. 과거 중국이 추진한 특구운영의 경험을 북한 당국은 참조할 것으로 보인다.

▶남=북한의 경제특구정책은 해안에서 시작해 내륙까지 확대된 중국 형태와는 다를 것이다. 즉 동해안의 원산, 서해안의 신의주, 그리고 남북간 접촉이 용이한 개성에 각각 특구를 지정하고, 중국·일본 등의 외자 유치를 시도하는 형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달 남북경제협력추진위에서 합의한 '개성공업지구법'의 내용이 북한 당국의 의지를 시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양=북한의 이번 경제관리 개선조치는 남북경협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생각한다.

남북관계 개선과 북한의 유연한 태도로 남쪽 기업들의 방북도 활기를 띨 것이고 이는 대북투자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북한의 물적토대가 얼마나 갖춰지느냐가 문제다.

▶남=동감이다. 남북간 경제교류를 증대시킬 것이 분명하다. '외화와 바꾼 돈표'(태환지폐)를 없애고 환율을 달러당 1백50원으로 현실화해 국내기업들의 채산성이 향상됐다.

물론 근로자들의 임금도 인상돼 임금책정이 어떻게 되느냐가 국내기업 투자의 관건이다. 중요한 것은 교류 증대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준비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차원에서 4대 투자보장 발효와 일관성 있는 대북정책 지원프로그램을 마련해 국내기업이 안정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아직까지 북한이 대외적으로 경협파트너를 찾는다면 남한 밖에 없다. 일정기간 남북경협은 남쪽의 일방적 지원형태가 지속될 것이다.

외자유치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설령 투자유치를 끌어낸다고 하더라도 생산효과로 이어지는데 불확실한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이 앞으로 후속조치를 취할수록 남쪽의 지원 필요성은 늘어나게 마련이다. 이것을 '일방적 퍼주기'라고 볼 것이 아니라, 북한경제를 관리한다는 차원에서 포괄적이고 장기적인 경제협력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이 보다 필요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남=북한의 이번 경제개선 조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한번 강조하고 싶다. 50%도 안되는 북한의 공장가동률을 고려하면 단기간에 물자를 증산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북한은 싱가포르 기업과 합작하면서 투자지분율을 80%까지 인정했다.

해외 자본 유치를 늘리기 위해서는 남한 기업에도 투자지분율을 조정하는 등 장기적 안목에서 후속조치를 북한 당국은 취해야만 한다.

또 전면적인 가격자유화는 공급능력이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엄청난 혼란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양=북한은 내부적으로 투자구조와 산업구조를 개편해야 한다. 어떤 형태로든 성장의 동력·원천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군수부분·중공업 우선 산업구조를 개선해야만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군수비중을 조금씩 줄이면서 중앙과 지방경제의 격차도 줄여야 한다.

▶오=북한은 공단조성,대외무역 확대 기반 마련 등 대외경제정책과 관련된 후속조치를 통해 외자를 유치해야 한다.

특히 이번 경제개선 조치가 북한 전역에 걸쳐 이른 시일 안에 안정적으로 정착토록 해야 한다.

중국은 홍콩·대만 등지의 화교 자본유치에 성공한 경험이 있다. 중국에 투자한 자본은 대륙의 큰 내수시장을 염두에 두고 이뤄졌지만 대북투자는 수출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점에서 외국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제신인도를 높이는 작업을 해야 한다.

투자회사에 대한 지분율 조정작업도 필요하다. 지금처럼 지분율을 50%이하로 제한하면 투자를 해도 경영권을 가질 수 없어 투자자들이 부정적 입장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진·선봉지역이 실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양=지난 2개월간 북한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때문에 우리도 이런 정세변화에 맞는 역할을 해야 한다.

식량이나 현물 등의 하드웨어와 정책수행 방법 등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지원해 북한의 경제개혁이 올바른 방향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오=이제는 북한과 '무엇무엇에 합의했다'는 소극적 시각에서 탈피, 북한을 '관리해 나간다'는 차원에서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대비책을 마련해야할 시기가 왔다고 본다.

정리=정창현·정용수 기자

사진= 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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